타인의 일을 관찰하기
"길을 걸을 때"
사람 구경을 좋아한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누군가의 삶의 모습이 묻어나는 행동이나 풍경을 좋아한다. 그저 걸으며 그냥 지나치는 타인에게서 '어느 삶의 모습'을 느끼기는 어렵다. 내가 눈길을 던지는 곳은 지나치는 가게의 유리 너머 공간, 트럭이나 길구석 바닥에서 노점을 하는 사람, 마트 안의 점원, 카페 직원의 모습이다. 누군가 일을 하는 모습에는 그것이 실제 그의 것이든, 내 상상의 나래이든 삶이 묻어난다.
그래서 나는 매일 걷는 길을 걸을 때도 그 공간이 낯선 사람 마냥 눈을 굴린다.
"타인의 일을 관찰하기"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 일하는 공간, 그 사람의 표정에 눈길이 간다. 나도 경제활동을 하니까 알게 된 것은, 아니 적어도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은 그 노동의 고단함과 삶의 무게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무언가 쉽게 느껴진다면 그건 먹고살기 위한 일이 아닐 것이다. 배경에 상관없이 쉬운 삶이 없듯이, 언제나 '나'의 삶이 가장 큰 고민이 듯이, '내'가 하는 일에는 쉬운 일이 없다. 모두가 각자의 '나'의 삶을 살고 있으니, 결코 쉬운 일은 없다.
그 힘든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삶의 무게다. 무거운 것을 버티게 하는 힘은 이상하게도 또 다른 무거운 것이다. 고단함을 묵묵히 그리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며 종종 위로를 얻는다.
"나도 결국 타인이라는 것"
'나'의 우울은 종종 타인의 우울로 위로받는다.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가 아닐까? 다만, 각자의 윤리적인 가치관에 따라서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부정하려 노력할 수 있는 본능. 그런데 이런 위로는 너무 얄팍하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나보다 못한 처지로부터 위로를 얻는 사람은, 마냥 좋아 보이는 타인의 삶에서 더 큰 우울을 얻는다.
누군가의 고단함을 보며 내가 느끼는 위로는 '삶이 원래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느껴지는 것에 가깝다.
'내' 삶의 무게가, 고단함이, 고민이 사실은 '원래 그런 것' 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
'나'의 삶은 유별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그런 순간에는 참 많은 것들이, 삶의 아픔과 무게가 자연스러워진다. 그 평범함에서 큰 위로를 얻곤 한다. 나도 결국 타인이라는 당연한 사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