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불망기 08

다시 좆소에

by 문정

다섯 번째 좆소 이야기를 쓰기 전에, 그때의 내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장장 8년의 좆소 생활을 내 손으로 끝내고 백수가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잠깐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쁨은 잠깐이었다.


첫 번째 퇴사 이 후로 몇 달간 재취업이 되지 않았고 나는 바닥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내가 얼마나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지 깨달았다. 도망치 듯이 빠르고 쉬운 선택을 하던 이십 대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미숙하고 불안감 높은 사람이었다. 거의 백 군데쯤 지원했으나 취업은 하지 못한 채로 지낸 지 삼 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무가치하고 무쓸모 하다는 생각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었다. 삼일에 한번 꼴로 늦은 오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술을 마시는 생활이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지옥 같은 숙취에 시달리며 침대에서 물만 마시며 지냈다. 누워서도 끝없이 구인 사이트를 확인하며 입사지원을 했고 다음 날에 면접이 없다면 또 술을 마시는 식이었다. 면접이 없는 날은 술에 취해 있거나 숙취에 시달리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날도 지옥 같은 숙취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물만 마시고 있음에도 울렁거림이 심해저 화장실에서 한 바탕 게워낸 다음이었다. 방까지 돌아갈 힘이 없어 거실에 누워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반쯤 기어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지난달에 면접을 보았던 회사였다. 사실 회사의 위치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 내일부터 바로 출근이 가능하실까요?"


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뿌옇던 머릿속이 일순간 반짝였다.


"네 그럼요."


재빨리 대답했다. 마치 망설이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다급했다. 그럼 내일 봬요 하는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구인사이트의 지원 내역에서 회사의 이름을 다시 찾아보았다. 희미한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간신히 5인을 넘긴 사업장이었고, 면접을 본지는 2주가 넘게 지나있었다. 휴대폰 메시지 내역을 확인해 보니 불합격 메시지를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좆소일지도 모른다는 경고등이 어러 개 켜졌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기근에 독버섯을 먹던 선조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독버섯을 먹고 죽든 굶어 죽든 어느 쪽이든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렇다면 일단 이 허기를 채워야 했다.


-


첫 출근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나의 좆소인생이 결코 순탄치 않았는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이 보다 강력했던 첫 출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근해서 내 자리에 앉자마자, 면접을 본 지 2주가 지난 후에 심지어 불합격했던 나까지 순번이 돌아온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자리의 쓰레기 통에는 멀쩡한 슬리퍼와 텀블러 그리고 카디건이 버려져 있었다. 쓰레기통이 작아 반쯤 위로 튀어나온 칫솔과 치약 세트도 보였다. 컴퓨터와 이메일 계정은 여전히 이전 합격자의 이름이었다.


사정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면접을 보았던 당시 합격했던 직원이 있었고, 그가 2주가량 인수인계를 받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퇴사를 했던 것이다. 심지어 사무실에 두고 간 개인 짐은 찾으러 가기도 싫으니 버려달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이전 합격자의 이름으로 급하게 인수인계를 받기 시작했다. 내게 할당된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내가 얼마나 이해하는지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퇴사일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전임자의 인수인계는 점점 더 빨라지고 방대해졌다.


그렇게 일주일의 폭풍 같은 인수인계가 끝나고 혼자서 업무를 시작한 첫날, 나는 탄식했다.


내가 또다시 좆소에 돌아오고 말았구나. 하고.


업무는 어려웠다. 매 순간 배우지 않은 것들과 처음 보는 것들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새로운 업무 보다도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메일 한 통, 서류 한 장마다 돌아오는 부정적인 피드백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이름이 불렸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 지적당하는 것도 당연히 업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사가 외부 일정으로 나가 있으면 열 번씩 전화가 왔다. 업무를 왜 이렇게 했는지 전임자에게 이렇게 배운 게 맞는지 확인하고 지적하고 힐난하는 내용들이었다.


매일 같이 그렇게 지적당하면서 입사 당시에도 온전치 못했던 정신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무너졌다. 나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거의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이전처럼 폭음을 하는 대신 일정량의 술을 거의 매일 마시는 형태로 알코올의존을 이어갔다.



겨우 수습기간이 끝나고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지자 상사는 다른 방식으로 내게 참견을 시작했다. 예를 들면 생활 습관 같은 것들이었다. 1층에 커피를 사러 잠깐 내려갈 때 사무실에서 신던 슬리퍼차림 그대로 내려가는 것을 지적하고 회의에서 금지한다거나, 머리를 풀고 있으면 묶고 일하라는 식의 지적이었다.


가장 많이 지적당했던 것은 업무 중 발생하는 오탈자였다. '가ㅁ사합니다.' 같은 실수로 발생한 오타를 지적당하면서, 나의 모든 메일은 검사당하기 시작했다. 조심하고 주의하고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는 등 나름의 방법을 찾았지만 매일 수십 통의 메일을 쓰면서 단 하나의 오탈자도 발생하지 않는 것은 내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몇 차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오탈자에 대한 지적을 받은 후에 나는 따로 회의실에 불려 가곤 했다. 눈이나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 그게 아니라면 정신과를 가보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바닥을 치다 못해 아예 없어지는 수준이었다.


당시의 나는 누가 내 이름만 부르기만 해도 숨이 막히곤 했다. 병원이나 은행에서 내 이름이 불리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출근해서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꼭 밀폐용기에 갇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 출근을 하고 매일 술을 마시며 나는 다섯 번째 좆소를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음주이력에 대해 알고 있는 가족들의 걱정과 잔소리가 더 이상 흘러 넘기지 못할 만큼 거세 졌을 때, 마침 생일도 다가오니 그 기념으로 건강 검진을 예약했다.


건강검진 전날에 겨우 술을 마시지 않고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건강검진 당일 오전 내내 빈 속으로 병원의 8층과 10층과 12층을 정신없이 오갔다. 당연히 검진이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술을 마셨다. 다음날에도 회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술 없이는 견딜 수 없었으니까.


건강검진을 하고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꾸준히 술을 마셨다. 그리고 열흘쯤 지나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왼쪽 갑상선에서 1.1cm의 결절이 관찰됩니다.

확진 및 추적관찰을 위해 상급 병원에서 전문의 진료가 필요합니다.


결과지의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나의 서른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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