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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사는 투칸 Sep 17. 2021

부부에서 부모가 되는 팀플레이 시작

일본에서 스웨덴 남자랑 애 낳고 기르는 이야기

남편에게 임밍아웃을 하는 거룩하고 감동적인 순간.


유튜브에서 기발한 기획으로 남편을 울리는 영상들을 보면서 나에게도 언젠가 저런 날이 온다면 꼭…!이라고 생각해왔건만, 현실은 그런 로망 따위 없었다. 애초에 나는 그렇게 스윗하고 말랑말랑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건 나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는가. (사실 3초 정도 고민했으나 결국 귀찮음이 로망을 이겼다)


그리하여 극도의 효율 주의자 INTJ 아내는 이렇게 임밍아웃을 한다


남편, 큰일 났어. 이거 봐.



내가 예상했던 스웨덴 남자의 반응은 2가지였다. 울거나, 웃거나.


정답은 후자였다.


소파에 기대 누워서 티비를 보다가 별안간 두 줄짜리 테스트기를 눈앞에 들이밀어진 그는 처음엔 ‘이게 뭐꼬?’ 하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테스트기와 내 얼굴을 번걸아 보았다. 그러다 내가 박스곽도 함께 던져주며 ‘positive라고!’를 외치니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그의 눈이 커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바이킹 같이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리하여 우린 신혼부부에서 예비 부모가 되었다.




새 식구 등장! 의 기쁨도 잠시. 그 기쁨을 평온히 유지하기 위해선 백조가 끊임없이 발차기를 하듯 현실을 허덕이며 격파해야 한다.


그 순간 나와 스웨덴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당장 해야 할 것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현재 상황

임신테스트기 양성.

마지막 생리일로부터 추정 주수 4주.

그리고 이를 알게 된 타이밍은 토요일 오후.


월요일에 병원에 가기 전까지 테스트기를 해볼 것

일본에서 출산할지 한국에서 출산할지 정할 것

임신 확인 시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알아볼 것(aka 산모 수첩, 의료비 바우처 등)

출산 가능한 근처 산부인과 병원을 리스트업 해서 평판 확인해볼 것


둘 다 전혀 모르는 분야, 겪어본 적 없는 영역을 다뤄야 하는 초고난도 팀플레이가 시작된 것이다.


잘해보자 우리^^^^^ (출처 : pixabay)




그리하여 나와 스웨덴 남자의 첫 토론은 ‘어디서 아이를 낳을 것인가’였다.


산모 입장에선 한국 출산이 편한 게 당연하다. 맘 편히 도움받을 수 있는 친정 식구도 바로 옆에 있는 데다가, 모국어 통하는 환경에서 일본보다 훨씬 선진화되고 산모 프렌들리 한 출산, 산후조리 시스템을 맘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친정어머니가 10년 넘게 산후조리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상태. 한국 출산을 할 경우 프로 오브 프로의 손길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역병 창궐로 인해 남편인 스웨덴 남자가 내 출산에 맞춰 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상황이고, 최악의 경우 3개월~반년 정도 생이별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점은 큰 마이너스 포인트였다.


또한 라떼 파파의 나라에서 온, 육아와 교육에 매우 관심이 많은 스웨덴 남자는 내가 한국 출산의 가능성을 언급함과 동시에 섭섭해하는 게 눈에 보여서 마음이 약해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일본에서 출산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한국 가서 낳고 돌아와도 키우는 건 우리 부부 둘이서 오롯이 겪어야 할 부분이니 그냥 처음부터 둘이서 하자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예비 부모의 겁 없는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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