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지배

by 박겸도

사랑. 과연 사랑만큼 오용되는 단어가 있을까. 사람들마다 자신의 ‘사랑’을 품고 행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연인이 연인에게. 내가 본 많은 사랑들을 다음과 같은 행태를 띤다.


바로, 사랑한다는 말이 ‘지배하고 싶다’라는 말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자식을 좀 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보내기 위해 행동을 강제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레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연인은 연인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연인을 자신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행동을 강요한다. ‘이 사람 누구야?, 나만 바라봐줘’ 그런 대화를 오갈 때마다 나는 취조실 벽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받는다.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사랑해, 그것은 너를 지배하겠다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사랑의 대상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대상 또한 스스로 자유롭다는 생각을 그친다.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또 한 가지 예가 있다. 혼자 하는 사랑 ‘짝사랑’.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다. 우리는 이 단어를 꺼내 들면 흔히 울상을 짓는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며 깨닫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사랑을 아름다운 마음, 헌신의 선한 감정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혼자 좋아하든 함께 좋아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저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혼자 사랑함에 비애를 느끼고 짝사랑을 사랑으로 앞에 붙은 접두사를 없애기 위해 안달 난다.


물론 어떤 사랑은 자유를 존중하려 애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본 그 많은 사랑들은 그 자유를 감당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사랑 앞에서 이상하리만치 상대의 자유를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는 그가 자유를 가졌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자유로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 같은 의미를 내포하는 중복된 단어를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혹, 그 의미가 너무 거북하여 상대를 속이려는 의지가 없다면 말이다. 당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연인, 자식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아마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로 서로를 안심시키고, 그 이름 아래에서 서로의 자유를 조금씩 포획하는지도 모른다.


만인의 사랑에는 상대의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 당신의 사랑은 과연 무엇이 결핍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