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만능주의 시대
바야흐로 대관심의 시대다. 아마 몇 세기 뒤 지나칠 정도로 문학적인 역사서에는 이렇게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고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은 인간에게 인터넷을 선물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대가로 매일 자신의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 먹히는 영벌을 받았으며,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은 자신을 포함한 인류 전체를 영원히 시선투쟁 하도록 선고받았다.
이제 인류는 어디에서나 자신의 삶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하며 관음한다. 그러나 신을 너무 노여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 형벌은 일종의 자해다. 신은 그저 그들의 팔을 강단있게, 그리고 깔끔히 잘라낼 칼을 선물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침범하며 관조한다. 이 시대에 마음만 먹는 다면, 그 사람의 아침 식습관부터 양말 무늬까지 알 수 있다. 만능물질주의를 넘어선 만능관심주의다. 일상의 모든 것, 자신의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상의 적절성 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그저 타인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 수 있다면 상관없다.
기업이 치킨 게임을 벌이듯, 붉게 물든 바다에서 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앞다투어 숨겨둔 ‘특별함’을 끄집어낸다. 구태여 그 사람의 표정을 마주할 필요도 없다. 그 사람은 나에게 ‘하트’를 누르거나 ‘넘기는 것’ 뿐, 표정은 스크린 너머에 있다.
우리는 이제 벌거벗은 임금을 보며 웃기보다, 거울인지 아닌지 분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웃는다. 앞에 있는 전라(全裸)가 타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여지 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이상하게 튀어나온 머리, 굽은 허리와 목, 불룩한 배.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내리며 우리는 웃는다.
그렇게 실컷웃고 나면 우리는 모두 거울을 잃어버린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진정으로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잃어버린 척하며 부정하고 있는 걸까. 과연 당신은 여전히 거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또,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