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본은 언제부터 묶였나
‘째깍-째깍’ 가끔은 눈치 있는 AI 시계를 상상하곤 한다. 초침이 부지런히 움직여, 분침을 움직이고 그 분침이 시침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 초침의 부지런함에 내 얼굴도 함께 어그러진다. 창 밖에 들이치는 불빛이 하나둘씩, 줄어들어 간다. 그에 발맞춰 도로를 수놓던 자동차의 불빛도 꺼져간다.
무력하다. 뛰쳐나가서 다시 가게 전등을 켜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비련한 현실은 부서진 굴뚝의 파편을 선물한다. 엄마 손에 이끌려 치과에 끌려갔던, 6살 그때의 그 감각이 다시 엄습한다. 붙들린 손을 아무리 휘젓고 흔들어 봐도 수갑처럼 묶인 채 그저 이끌려 갔던 그 기억.
나의 무기력을 한 참 동안 실감하던 차, 눈치 없는 초침은 기어코 60번을 돌아 시침과 분침을 ‘숫자 12’ 안에 정갈히 모이게 했다. ‘아-’ 나는 나지막이 탄식을 흘리고 삐져나온 눈물을 삼킨다. 있지도 않았던 내 머리 위 왕관을 단순하고도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앗아간다. 이게 다 미련한 시계 때문이다.
또 누군가의 생일이 시작되고, 누군가의 생일이 끝난다. 난 이제 아무것도 아닌, 그저 사람 1이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에 대한 모든 관심과 축하를 몰수할 것이다. ‘생일’이라는 이름으로 누렸던 모든 권력은 오아시스의 신기루처럼 허망하게 사라진다.
나는 불과 몇 시간 전 나의 탄생을 축하했던, 그들이 맞는지 다시 확인한다. 고작 달라진 것은 내가 아닌 그저 24시간뿐이었는데, 나의 모든 대우가 뒤바뀌었다. 나는 그날 이전과 이후 모두 ‘존재’하고 있었으며 ‘변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어김없이 ‘그날’이 찾아오고 떠나면 일제히 변한다.
어쩌면 나는 생일에만 축하받을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더욱 의문인 점은 선물을 건네고 난 뒤, 그들의 표정이다. 그들은 준비한 선물을 건네고 묘한 웃음을 띤다. 그러나 그들은 웃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윗입술이 아래 입술을 지그시 누르지만, 차마 막지 못한 입꼬리는 광대에 닿는다. 몹시 기괴하다.
그저 선물을 전달하는 행위 그 자체로 기뻤다면, 그 강압적인 윗입술을 거두어도 되었을 텐데, 감히 드러내지 않으려 입술로 급급히 막아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저 괴상한 웃음의 근원에 대해 나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그리 큰 노력 없이 그 웃음의 주인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모르고 싶어도 ‘인지’하게 된다. 더 이상 윗입술이 그의 투박한 앞니와 아랫입술을 숨기지 않고 환히 웃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간신히 구역감을 참는다.
그러나 도망치려도 그가 선물했던, 그리고 그들이 내게 전했던 선물에 묶인 리본끈이 내 발목과 손목을 붙잡는다. 그렇다, 그들은 내게 선물이 아닌 이 ‘리본끈’을 선물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일에 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선물이라는 미끼에 리본이라는 낚시줄로 묶어 내게 던졌고 나는 물었다. 그렇게 그들 손짓과 말에 나는 선물을 준비해야 했으며, 그들의 탄생에 대한 찬송가를 불러야 했다.
나는 이제 나의 한정적인 탄생 축복 이유와 그들의 웃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무력감을 느낀다. 이제는 눈치 없는 시계가 아닌 눈치를 무시할 리본끈을 가진 그들에게. 하지만, 여전히 6살 꼬마 아이에 머물러 있기에는 내 손은 너무 커져버렸고 몸집도 제법 커져있었다.
나는 이제 그들을 뿌리칠 수 있다. 나는 순순히 도살장으로 향하던 자유 잃은 돼지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6살의 무력했던 그때와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쥔 리본끈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도 그들에게 리본끈을 함께 선물했다.
이번엔 내가 매듭을 묶은 채로, 강단있게 아랫 입술을 지긋이 누르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