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카공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공부하거나 작업에 몰두하는 이들, 그들을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그 풍경은 이제 너무도 익숙하여, 카페란 공간이 커피를 마시는 장소인 동시에 일상의 사적 독서실이자, 임시 도서관으로 기능하고 있는 듯하다.
한 잔의 커피로 몇 시간을 머물 수 있는 관대한 공간이 인기를 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테이블 아래 콘센트가 숨겨진 매장은 작은 은총처럼 느껴지고, 반대로 의도적으로 콘센트를 차단한 카페는 그들의 유입을 막으려는 소극적 선언처럼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 묘한 긴장을 가장 잘 조율해낸 브랜드는 스타벅스다. 이곳에선 때때로 음료조차 주문하지 않은 채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누구도 그들을 쫓아내지 않는다. 어떤 이들에게 스타벅스는 단지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포용적 분위기를 갖춘 하나의 도시적 거실이다.
오늘은 유난히 더운 여름의 초입. 나는 시끄러운 대화를 피해 조용히 공부하는 이들이 모인 스타벅스를 찾았다. 실내는 놀랍도록 서늘하고, 긴팔 셔츠가 오히려 안도감을 주는 차가운 공기가 머문다. 주변에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읽거나 타이핑하는 이들—그들 덕분에 나 역시 집중할 수 있다. 도서관과는 달리, ‘눈치’라는 감정 노동 없이도 노트북을 펼칠 수 있고 매장의 음악은 백색소음처럼 사유의 배경으로 흘러간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왜 집에서는 이 같은 집중력이 생기지 않을까. 그곳에는 적정 온도도, 함께 몰입하는 타인의 기운도 없으며, 오히려 침대와 스마트폰이라는 나태의 심연만이 기다린다. 결국 공간이란 물리적 형태만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 기이한 작용을 가진 구조물인 셈이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계절의 뜨거움을 에어컨 바람이 흐르는 동네 카페에서 조용히 견뎌내기로 한다. 동시에 여름휴가를 준비한다. 더 이상 열정의 도보로 관광지를 누빌 나이는 지났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은 ‘힐링’이다—차가운 공기, 과묵한 집중력, 그리고 자신을 다시 성찰할 수 있는 느슨한 시간. 그러니까 어쩌면, 내 이상적인 휴가지란 이 조용한 스타벅스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올 여름의 시작은,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