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계는 녹는다

달리와 유럽인에게 배우는 ‘덜 바쁘게 사는 법’

by 이담우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 시계는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태양에 너무 오래 노출된 초콜릿처럼, 시간은 부드럽게 무너진다.
제목은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초현실주의 회화지만, 요즘 같은 여름날엔 어쩐지 현실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느려지고

생각은 멈추고
몸은 무거워진다.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여름은 직선이 아니라 엿가락이다

예전에는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생소했지만
요즘은 뉴스보다 날씨가 먼저 알려준다.
6월부터 시작된 더위는 7월, 8월, 심지어 9월까지 이어지고
우리의 시간은 녹아내린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럴 땐… 그냥 멈춰야 하는 게 아닐까?"


파리는 여름이면 텅 빈다

유럽의 여름은 다르다.
프랑스는 7월만 되면 도시가 조용해진다.
식당도 닫고, 회사도 닫고, 심지어 치과도 ‘8월에 만나요’라는 문구를 붙인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긴 휴가를 떠난다.

일을 멈추고
삶을 고르고
마음을 되돌아보는 시간.

여름은 그들에게 비워야 채워지는 계절이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비우는가'다.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쁠까?

반면 우리는 여전히
에어컨 아래서도 회의를 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내 탓 같고

게으른 것 같아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여름의 무력함은 죄가 아니다.

계절이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이다.


여름엔 멈춰도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멀리 떠나는 대단한 여행이 아니다.

가까운 숲길에서 산책을 하거나
아무 이유 없이 낮잠을 자거나
커피 한 잔을 오래오래 음미하는 일.

그저 '빨리' 말고 '깊이' 사는 일.


달리처럼, 느리게 흐르는 여름

달리의 시계처럼
시간은 가끔 녹아도 괜찮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삶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그런 틈 사이로
우리는 우리를 다시 발견한다.


결국, 여름은 이런 계절이어야 한다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쉬었는가로 기억되는 계절.

생산이 아니라 생각(사유)의 시간.

속도가 아니라 회복의 계절.

이번 여름엔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덜 바쁘고, 더 충만하게.


여름의 시계는 녹아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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