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오드리 헵번의 이름이 화제에 올랐다. 청순하면서도 당당했던 그녀의 분위기, 시대를 앞서간 패션 감각, 그리고 영화 〈로마의 휴일〉속 우아한 스쿠터 질주 장면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이번 주말엔 그 영화를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문득, 질문이 따라왔다.
왜 로마는 영화 한 편으로 전 세계인의 기억에 각인될 수 있었을까?
도시의 이미지는 이제 더 이상 행정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찾은 그 도시에서 '어떤 기억을 소비하고 싶은가', '어떤 정서를 공유하고 싶은가'의 문제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도시를 기억하고, 소비하고, 재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다.
〈로마의 휴일〉이 만든 로마는 실제 로마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그곳은 권위에서 탈출한 한 여성의 하루가 흐르는 거리였고, 사랑과 자유가 잠시 머문 낭만의 장소였다. 그 기억은 1953년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을 트레비 분수 앞으로 끌어들인다.
도시가 영화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그 영화가 도시의 서사를 품고 있어야 한다. 그 공간이 단지 풍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이 흘러가는 장소로 설계돼야 한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나 스페인 계단은 원래도 멋진 장소였지만, 오드리 헵번이 그곳을 거닐며 느낀 감정이 담겼기 때문에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결국 문제는 기억될만한 ‘장소가 없다’가 아니라, ‘서사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도시가 시네마적인 상상력을 품으려면, 그 전에 다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문화적 스토리텔링 아카이빙
도시가 품고 있는 기억과 감정을 수집하고 구조화하는 작업. 구술사, 생활사, 지역문학, 시민의 기록 등 다양한 층위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통합해야 한다.
둘째,장소의 감정화 작업
단지 ‘예쁜 곳’이 아니라, ‘감정을 머물게 하는 곳’으로 장소를 재해석해야 한다. 도시 곳곳을 인물의 감정선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공간적 해석력이 필요하다.
영화가 도시를 바꾸는 게 아니라, 도시가 품은 이야기가 영화를 만들고, 관객의 기억이 도시를 다시 찾게 만든다.〈로마의 휴일〉은 로마를 관광지로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머문 하루를 기록한 ‘감정의 풍경’이었다. 도시는 언제나 ‘감정을 기획하는 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