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이후의 도시 1
오늘날 우리는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수많은 광고가 욕망을 자극하고, 우리는 ‘필요’가 아니라 ‘갖고 싶음’을 이유로 소비한다. 그러나 이 소비는 대부분 한 번의 만족으로 끝나며, 이후 더 많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끝없는 순환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소비는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가 되고, ‘나는 무엇을 사느냐’가 곧 ‘나는 누구인가’를 정의하는 척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소비가 있다. 바로 생산적 소비다. 이는 단순히 상품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새로운 생산의 조건을 확장하고 사회를 재구성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생산과 소비를 서로 분리된 과정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소비를 생산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다음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이해했다. 우리가 무엇을 사느냐에 따라, 다음에 어떤 것이 생산될지가 결정된다.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면 친환경 생산이 확대되고,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면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 결국 소비는 생산의 방향을 정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생산적 소비는 물건만이 아니라 관계를 산다. 협동조합에서 구입한 빵 한 조각은 단순한 빵이 아니다. 그것은 그 빵을 만든 사람의 노동, 그 곡물을 키운 농부의 노력, 그것을 판매하는 지역 사회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돈을 지불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생산적 소비는 우리를 욕망의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바꾼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선택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불하는 돈이 어떤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소비를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윤리적, 정치적 행위로 변화시킨다.
오늘날의 소비는 종종 환경을 파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소수의 거대 기업에게 부를 집중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공정무역 커피를 고르고, 지역 농산물을 사고, 협동조합에서 물건을 구매한다면, 이 소비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된다.
생산적 소비는 ‘더 나은 나’를 보여주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더 나은 우리’를 만들기 위한 소비다. 그것은 불편할 수 있고, 때로는 더 많은 고민과 선택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자유를 경험한다. ‘무엇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비를 통해 만드는 세계는 곧 우리가 살게 될 세계다. 오늘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사느냐가, 내일의 생산과 사회의 구조를 결정한다. 생산적 소비는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니라 연대와 책임의 표현, 그리고 미래를 선택하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행동이다.
문득 소비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무게로 넘어질 때'
내 주변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가볍게 , 좀 더 가볍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까지
내 삶의 미니멀리즘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