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버지를 만난다

by 이담우

주말, 카페에서 딸아이가 찍어준 내 얼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한 번도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부모 마음이란 자식 발가락 하나라도 닮았다고 믿고 싶은 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는데, 그 때 아들은 닮음보다는 다름을 철저히 믿고 싶었다.


어린 시절, 주위 사람들은 내가 외탁을 더 많이 했다고들 했고, 나 역시 앨범 속 젊은 아버지와 내 모습은 다르다고만 여겼다.
살면서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성격, 식습관, 버릇—이 불쑥 튀어나올 때면 스스로도 놀라 움찔하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하거나 다정한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결혼 후, 명절에 뵐 때면 일상적인 안부 정도를 내가 먼저 묻곤 했다.
아버지는 그런 대화에 서툴렀고 아들도 그 이상 다가설 줄 몰랐다.


유년시절,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유일한 제안은 이른 아침 목욕탕에 가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동네 목욕탕을 다녔다.
어린 나는 아버지와 목욕탕에 들어가는게 거북스러워 아침잠을 핑계로 늘 피했고, 아버지도 언제부턴가 더 이상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고향을 떠나 도시로 유학 온 뒤로는, 부자가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는 일은 더더욱 사라졌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와의 사이에 아내와 아이들이 빈 간격을 조금 메워주었다.
그 덕분에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부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 역시 아버지가 되어보니 자식과의 관계가 내가 노력한 만큼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나이였기 때문일까.
힘없이 늙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는 미움보다 안타까움이 더 커졌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에게, 엄마에게, 그리고 친척들 말고도 세상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


오늘, 딸아이가 찍어준 사진 속 내 얼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다시 아버지를 만난다.


이제는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는 납골당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다.

아니 독백인가


매번 죄송하다는 말과 가끔은 눈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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