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 조언은 예의를 갖출 때 더 효과적이다
제휴논의를 위해 소규모 VC(엑셀러레이터이라고 주장하지만 별 프로그램이 없어보여서 소규모 VC라고 칭함)를 만났다. 서로에게 득되면 득되었지 어느 누구도 해될 것이 없으며, 밑져야 본전이라고 할만한 내용이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라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연락하여 미팅을 잡았던 것이다.
미팅자리에 앉자마자, 별 아이스브레이킹 멘트도 없이, 우리 서비스와 경쟁사를 비교하며 심하게 까대기 시작한다. (경쟁의 장단점이 있고 우리의 장단점은 있으며, 그 사실은 양사가 모두 잘 알고 있어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우리의 제안내용은 구체적으로 들어보기도 전에 뭔가 의미는 없지만 기선제압은 하고 싶었던 걸까? 듣고보면 결국 '니네가 뭔데 우리 같은 데랑 제휴를 하자고 하냐'는 것. 우리에게 이야기할 기회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in-bound로 들어오는 제휴만 해봤지, 이렇게 out-bound로 제휴를 제안하는 자리 자체가 낯설었을 우리 멤버들을 옆에 두고 민망함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예전에 이 회사에 LP로 참여해준 '나'라는 존재는 잊은 걸까? 도와주신 덕분에 펀딩을 잘 되었습니다라며 인사하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 분에 대해 익히 들었던 '갑질' 소문이 이거였구나! 우린 투자를 받으러 온 것도 아닌데, 마치 가격낮춰보려고 단점부터 까대는 것 같은 태도는 뭘까?'라는 개인적 분노가 먼저 치민다. 내가 혹시 이분에게 갑질을 하지는 않았었나 곰곰 생각해보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한가지 잘한 것이 있다면, 외부파트너들에게 특히 내가 갑일 수 있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몸은 낮추는 것이다. (내돈으로 투자해도 그러면 안되지만, 내 돈도 아닌 돈으로 투자하는 건데 내가 갑질할 자격이 있나?)
더이상 듣고만 있을 수도 없거니와, 제휴하면 좋고 안해도 다른 대안이 많은 상황이었던 터라 정중히 컴플레인을 했다. 지인인지라 의견을 한번 나눠보려고 가볍게 방문한 건데, 우리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앉자마자 서비스의 부족한 부분만 지적을 하니 당황스럽다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갑자기 이 제휴안에 대해 호의가 있다며 구체적인 접근단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본인은 우리 서비스가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고 첨언한다. 그리고는 본인의 직설적인 멘트를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한다. 직설적이라...
사전적 의미로는,
직설적: 바른대로 말하는. 또는 그런 것
무례한: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음
본인의 무례함을 직설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쿨함을 챙기는 이따위는 뭐지?
돌아오는 길에 founder 로 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익히 잘 아는 일부 VC들, LP의 입장이었던 나에게는 그렇게 예의바를 수 없는 VC분들에 대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니었으나, 새롭게 들린다.
표현이 직설적인 것과 무례한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이다. 대부분의 무례한 사람들은 본인이 직설적이라고 생각하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fact 를 기반으로 구체적 단점을 논할 때는 직설적이라고 받아들여질만 하지만, 잘 모르는 상태로 두루뭉술한 단점을 고압적인 자세로 이야기할 때는 무례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상대방은 의외로 스마트해서, 본인에게 직절적으로 조언을 주는 것과 무례하게 갑질하는 것은 아주 잘 구분해낼 수 있다는 점을 잊지마시라.
예의를 갖추면서도 직설적인 조언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직설적인 조언이 가장 효과적일 때는 오히려 예의를 갖췄을 때이다. 무례한 자세에서만 직설적인 표현이 나온다면, 직설적인 것을 차라리 버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회적 관계든 인간적 관계든 한번 마주치고 끝나는 경우보다, 두고두고 마주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