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나를 아는 또 다른 사람

by 김준

주말이었다.
그녀는 시장에 다녀온다고 했고,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따뜻한 햇살, 조용한 거실.
모처럼 느끼는 혼자의 시간.
나는 책장을 열었다.

그녀의 책들 사이에
얇은 노란 봉투 하나가 끼어 있었다.
조심스레 꺼내 보았다.

사진.

그리고,
그녀와 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

남자였다.
아주 자연스러운 거리감,
그리고
그녀의 얼굴엔
지금껏 본 적 없는 웃음이 담겨 있었다.

그 뒷면에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그날 참 많이 웃었지.
그 웃음, 기억나?”


가슴이 묘하게 저렸다.
기억엔 없었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사람.

나는 무작정 봉투를 접어 넣고
소파에 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시 후
현관에서 그녀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봉투를 건넸다.

그녀는 그걸 보자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사진…
당신 기억엔 없을 거예요.”



“맞아요. 기억 안 나요.
그런데, 묻고 싶어졌어요.”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사람,
우리가 다툼이 많았던 시기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였어요.”



“연락은 지금도 하시나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사고로 기억을 잃었단 얘길 듣고,
한참 후에 편지만 하나 왔어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변명하지 않았다.
숨기려 들지도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조용히 꺼내놓았다.

그게 더 아팠다.

“그 사람을… 좋아했어요?”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작게 대답했다.


“좋아하려 했어요.
당신이 나를 자꾸 멀리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근데…
안 되더라고요.
이상하게… 당신이 계속 눈에 밟혀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과거의 나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녀는 상처 속에서도
나를 기다렸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기억은 돌아왔지만,
과거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 앞에서
나는 그녀를 다시 이해해야만 했다.
사랑이란,
기억을 되찾는 일만큼
용서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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