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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살이- 두달차(21.10월)

계급의 단상 -어디까지 평등할 수 있을까?

by 소전 India


인도에 가면 물조심, 특히 얼음 조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무시한 채 더운 날 운동하다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의 유혹을 참지 못한 대가는 처참했습니다. 대소변의 위치가 바뀐 듯 2박3일의 혹독한 설사로 인도의 환영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규정상 부임한 지 두달이면 집을 구해서 가야 하는데 인도 부동산 중개인의 어이없는 실수에 지체가 되어 집이 없는 설움과 내 집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은 있지만 인도 살이의 방식대로 방향을 잡고, 천천히, 느긋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중개인의 도움으로 10월 중순경이면 입주를 할 것 같습니다.


인도 집주인들의 신분이 높다 보니 아파트 중개인의 미천한 신분으로는 질문도 못한다는 이해가 되지 않는 답변이었습니다. 같이 여러 차례 집을 보러 다니고 나름 큰 소리를 쳐서 전문가로 보였는데 계급이 벽을 가로막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중개인을 통해 알아보니 지난 4,5월 인도 코로나 2차 확산으로 많은 일본 외교관들 이천 재지 변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귀국할 수 있다는 면책조항으로 집주인들이 손해를 봐서 외교관과 계약은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이유라도 알려줘야지. 그걸 얘기도 하지 않고 끙끙대다가 계약도 틀어져 버리고 카스트 제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할 줄은 몰랐습니다.


인도 카스트의 단상을 보면서 사람은 어디까지 평등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신라시대부터 진골과 성골, 조선시대의 양반을 주축으로 사농공상 등 계급사회가 있었고, 일본의 막부와 무사, 유럽의 공작, 백작 등 시대와 나라를 떠나서 정치와 사회제도에 따라 계급제도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어원은 포르투갈어로 부족, 인종을 뜻하는 카스타(casta)에서 유래되었고, 여기에 힌두교의 계급, 유형, 순서, 색상을 뜻하는 바르나(Varna)가 합쳐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수드라, 바이샤 등 4개의 큰 계급과는 별도로 불가촉천민들이 있고, 여기에 직업을 구분하는 자띠(jati)가 더해지면서 각 계급마다 층층이 구분을 하면서 약 3천여 개의 계급이 생겼다고 합니다.

02-02-카스트(출처 talesalongthewaycom.png 카스트 제도 이해 (출처 : talesalongtheway.com)

원래 바르나와 자띠는 형식적인 규범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양반이라는 단어처럼 의무감이나 구속력은 없었습니다. 1870년경 인도에서 발생한 세포이의 항쟁 이후로 영국의 통치제도 변경에 따라 여러 자료를 찾다가 카스트 제도를 발견하였고, 이를 효과적인 통치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전국적인 인구조사와 더불어 인적사항에 신분을 추가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 경우에도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하였고, 계급이 주는 편리함과 자식까지 대물림 되면서 새로운 계급이 생기고 높은 신분이 점점 권력을 잡아가면서 사회를 통제한 정교한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 이외에도 힌두교가 주된 사상인 다르마(윤회)와 카라마(업)라는 원리도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현세와 내세가 서로 연결되어 계속 순환한다는 다르마와 현세의 모습은 과거의 업으로 인한 현상으로 다시 내세에 좋은 삶을 위하여 현세에 적선하고 착한 업을 쌓는다는 카르마가 서로 얽혀서 과거,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그 속에 가로와 세로로 겹겹히 닫힌 사회라는 인상도 주었습니다. 인도 역사에서 사회 전반적인 계급의 불평등, 대를 이어 전해지는 불평등을 느끼면서 반란이나 항쟁이 없었나 궁금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만적이라는 사람이 왕후장상에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하면서 민란을 일으켰고 시대마다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했고, 이러한 부분이 촛불까지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카스트의 미래를 물어보니 서서히 변한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한 정보의 습득과 자본주의 영향으로 부의 성장과 도시화로 인한 익명성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또 다른 계급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문득, 베짱이의 우화가 생각납니다. 베짱이가 하루살이와 신나게 놀고 내일 다시 보자고 했더니 하루살이는 내일이 뭔데? 하는 것과 가을이 돼서 베짱이가 개미한테 식량을 얻으러 갔다가 내년 봄에 다시와? 했더니 베짱이가 내년이 뭐야 하는 것처럼 커다란 인도라는 사회에는 이해하기에는 양립할 수 없는 커다란 벽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거나 현재의 문제는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행복지수를 본다면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인지, 닫힌 사회의 우물에서 보는 하늘만 보면서 행복을 따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베짱이 우화처럼 베짱이와 개미처럼 역할을 바꾸어 본다면 인도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겠지요


내가 다행히 인도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제 부모님이 당신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힘겹게 농사일을 하면서도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유학까지 보내면서 공부를 시켰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인도에서 소전 드림 (20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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