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천국 - 인도
겨울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집안의 냉기가 없어지고 가끔 한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느낄수 있습니다. 인도에 온지 6개월이 지나면서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점점 사라지고, 차량 경적이나 아파트 위층의 소음에도 무던해지고 있습니다. 신체 감각 부분은 거의 현지화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내적인 부분은 아직도 모호합니다. 가끔 업무를 하면서 직원들을 만나며 어! 내 맘대로 않되네... 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셀프위안을 해보지만, 인도는 정말로 넘어가야 할 산도 많고 경험하지 못한 다양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술이 아직 반병이나 남았네 하는 생각으로 좋은 점을 찾기 위해서 탐구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좋은 점 중의 하나가 바로 동물들의 자유로운 삶을 보는 것입니다. 길 위에서 들판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 정원이나 공원에서 유유자적하는 공작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소나 개의 눈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참 고요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인도에서 동물로 산다는 것이 축복받은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추구하는 불살생 즉 아힘사(ahimsa)의 정신이 기반으로 한 것 같습니다. 일단 힌두교에 의해서 소고기를, 무슬림(무슬림: 이슬람 추종자, 이슬람 :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 여기서는 넓은 의미로 무슬림으로 통일)에 의해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고기의 양대 산맥이 없는 상태이고 사회 지도층이 종교적 신체적 이유로 채식을 선호하는 관계로 고기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자연히 양고기와 닭고기가 대세지만, 양고기는 약간의 냄새와 비싼 가격으로 선뜻 내키지 않고, 닭은 튀김과 요리 방식이 한국과 달라 아직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한식당에서 고기메뉴가 있지만, 신선도 면에서 한국보다 품질이 떨어지고 비싼 값을 치루어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가 않습니다. ‘삶은 고기서 고기다.’ 라는 말이 전혀 통하지 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여섯 달 인도살이의 경험과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동물들의 행복순위를 매겨보았습니다. 1위는 당연히 소입니다. 인도에서 소는 거의 신(god)과 동급입니다. 힌두교 신화에서 부의 여신인 락슈미의 화신으로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꽃도 걸어주고 기도도 하면서 문전박대 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근원을 따라보니 종교적 관습이 컸습니다. 마누법전 등 고대 힌두법전에서 소고기를 금하라는 규율은 없었고, 힌두 유적지에서 날카로운 도끼나 칼로 잘린 자국이 있는 동물들의 뼈가 있어 도살과 제물의 증거도 보인다고 하는데 먹지 않다니? 지금은 힌두교가 대세지만, 기원후 4년부터 500년간은 불교가 번성하고 힌두교가 소수 종교였습니다. 불교의 기본 교리인 아힘사(불살생)의 교리가 퍼지면서 힌두교도 이를 수용하여 기본원리가 되었습니다. 종교적 관습 이외에도 농업에서 소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이런 소를 마음대로 도축하면 생산력에 문제가 있어 정책적으로 도축과 유통을 금지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화가 계속 이어지다가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는 민족주의와 힌두이즘이 대두되었고, 소의 우상화가 힌두이즘을 대표하는 운동이 되면서 지위가 상승되었다고 합니다. 실상 인도가 소고기를 수출하는 상위국가라는 사실을 알고 약간 의아했습니다.(브라질 202만톤, 인도 190만톤 호주 161만톤, 미국 137만톤, 우리나라 수입량 42만톤, 2018년 기준, 미국 농무성 자료) 주로 무슬림들이 소고기 도축과 수출을 하는데 내막은 종교, 정치, 사회, 상업적으로 얽히고 설켜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또한 거리에 배회하는 소들도 다 주인이 있습니다. 삶이 피폐한 것인지는 몰라도 목초지가 아닌 도심지에서 먹을 것을 주면서 방목하면서, 조석으로 젖을 짜서 팔면서 사람과 공생하는 삶을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가롭게 거리를 누비면서 차가 오거나 가거나 상관하지 않고 유유자적한 소가 역시 인도에서는 최고 행복한 동물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견공입니다. 역시 도축도 유통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개를 했지만(?) 어느 순간 개의 신분격상과 가족들의 만류로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초딩 시절 방과후 먼 거리를 헐레벌떡 뛰어와서 반겨주던 바둑이가 보이지 않고 저녁 밥상에 고깃국이 나오는 이유를 한참 후에야 알고 몰래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개 팔자라는 말처럼 부유한 집에서 호사를 누리는 개도 있고, 들판에서 야생으로 사는 개도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담벼락을 경계로 하인들의 안내로 산책을 하며 호사를 누리는 개가 있는 반면, 밖으로는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밤새 울부짖고 싸우고 다쳐서 절뚝거리면서 살아가는 삶도 있습니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은 늘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들개의 공격을 피해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인도 전역에 우리나라 인구수에 버금가는 4천여마리의 들개가 떠돌고 있고, 관리가 부실하다 보니 개에 물려 광견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연간 약 2만 명으로 세계에서 최고로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낮에 따뜻한 곳에서 편안하게 배를 깔고 낮잠을 자는 행복한 모습을 보며, 개의 삶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돼지입니다. 아직 거리에서 돼지를 본 적도 없고, 무슬림들이 돼지를 신처럼 받드는지는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은 일상다반사이지만, 인도는 어림도 없습니다. 무슬림에서 돼지고기를 금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20%에 밖에 되지 않는데 인도 전국에서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는데 상호 종교적 배려차원에서 먹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코란(제5장 식탁의 장)에 '죽은 동물의 고기, 피, 돼지고기는 알라가 아닌 사악한 신들에게 바쳐지는 제물이다. 따라서 이런 고기는 먹지 않아야 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좀 더 알아보니 사막에서 유목을 하는 환경에서 돼지의 습성이 유목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농경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먹으면서 동고동락이 가능하지만, 유목을 하는 입장에서는 천성이 게으르고 무리를 짓지 않아 이동이 어렵고, 양, 염소처럼 풀을 뜯지도 않고 젖이나 가죽도 주지 않고, 고기도 쉽게 상하고 보관이 여의치 않다보니 이런 관습이 생긴 것 같습니다. 문화와 관습 차이로 우리나라처럼 집단으로 사육되지 않고 이런 돼지 같은 x라는 욕도 없거니와, 잔치를 빛내주는 돼지머리도 보이지 않아 나름대로 행복한 축이라고 봅니다.
다음은 양과 염소입니다. 우리나라는 양이 거의 없어 행복도의 비교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단 사육되지 않고, 유목생활을 영위합니다. 소와 돼지고기가 없다보니 인도에서는 양고기가 대세입니다. 햄버거에 소고기나 아닌 양고기를 쓰고 있고 대부분 식당에나 호텔 뷔페에서 가장 즐겨먹고 선호하는 고기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다양하게 양고기를 즐길 수 있지만 모두 냉동, 냉장 상태로 바다를 건너와야 하고 가격도 만만치가 않아 즐기기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목초지에서 열심히 지내다가 사람들의 식탁을 채워주고, 털과 캐시미어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닭은 행복도 순위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고기로 등극되어 가장 불행한 동물이 아닌가 합니다. 종교적인 편차도 없고, 전 세계에서 사육중인 300억 마리의 가축 중에서 230만 마리가 닭이고 하루에 약 2억 마리씩 도축되어 식탁으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도 탄도리 치킨, 커리치킨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닭의 수명을 봤을 때 알을 낳는 닭은 약 1년을 살고, 식용으로 쓰이는 닭은 겨우 5~7주 정도라고 합니다. 야생의 닭이 7~13년을 사는 것을 보면 너무 허망한 삶이 아닌가 합니다. 가축이 되기 전에는 수풀 속에서 자유롭게 살았다가 사람과의 동거를 시작하고 개체수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좁은 닭장에서 힘겹게 살면서 자신의 수명의 50분의 1도 살지 못하는 불행한 동물인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공작과 비둘기를 비롯한 새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힘사의 전통과 관습에 따라 인도인들 대부분이 모기도 때려잡지 않고 손으로 오지 못하게 쫒아내는 것을 보면 직접 살생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 동물들의 삶과 고기 먹는 어려움을 느끼면서 사람과 견주어 동물들의 삶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외신에 우리나라 해물탕에 산낙지를 넣는 행위가 동물학대가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 기사도 있었고 개를 먹는 것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있었습니다. 먹거리를 위해서 집단으로 사육하고 도살하여 식탁에 배달되는 소나 돼지고기를 먹는 거나, 해물탕의 산낙지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인류의 역사적 관점에서 동물은 사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가축으로 길들여 집단으로 사육되었고, 도축과 냉장 등 물류,유통시스템과 결합되면서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 대형 먹거리 산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야생에서 동물들은 스스로 생존의 범위에서 살생하고 사냥을 못하면 도태되는 구조인데, 우리는 누군가가 잡아 손질하여 팩에 담긴 고기를 구입해 먹으면서 가장 풍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먹는 것에 대하여는 종교적, 문화적인 관습의 차이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삶입니다. 가족의 일원으로 삶도 살지만, 버려지는 비운의 삶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과연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자다가 뒤척이면서 고양이를 깔아뭉갠 전력으로 한번 키우고 싶지만 여러 사정상 실패를 하던 차에 인도에 와서 냥냥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사관 공터에 약 20여 마리의 소대급 규모의 냥이들이 살고 있어 가끔 먹이를 주면서 욕망(?)을 달래고 있습니다. 또한 뽀자툰이라는 웹툰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곤 합니다. 유리 작가님의 ‘동물가족은 그 평생을 책임질 수 있다면 사지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멘트가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어쩌면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로서 그들의 행복을 빌어봅니다.
2022년 2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