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 - 인도
인도의 체감 온도는 해당 월에 10을 곱하면 된다고 합니다. 3월은 30도, 4월은 40도, 5월은 50도로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8월이 80도, 9월은 90도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6-7월부터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조금 수그러들다가 11월이 되면 기온이 낮아집니다. 그래도 여름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넘나들고 한국과 같은 높은 불쾌지수는 없지만, 더위를 견디기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국은 절기에 따라서 날씨가 달라지듯이 인도도 봄을 알리는 힌두 축제인 홀리(holi, 3.18일)를 기점으로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합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을 알리는 힌두의 축제이고, 색채의 축제입니다. 거리에서 색가루를 뿌리고 물감을 묻히며 즐기는 축제입니다. 기온이 올라가서 스모그는 없어졌지만, 차량 매연과 흙먼지가 덮인 뿌연 하늘로 숨쉬기는 더욱 갑갑하기만 합니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반팔을 입는 어색함처럼 인도 코로나의 반전도 놀랍습니다. 1월과 2월에 일일 확진자수가 35만 명까지 급증하였다가 지금은 4 천명대로 많이 떨어졌고 중증환자가 많지 않아 큰 위기 없이 종료되는 것 같습니다. 인도 사람들의 내성이 강한 건지, 아니면 더위에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어 봅니다. 지난 3월 10일, 지난해부터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던 대선이 끝났습니다. 만나는 인도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대선 후보자와 공약을 묻고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내심 우리나라의 국격이 상당히 높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 총선은 2019년에 끝났지만, 최근 일부 주에서 지방선거가 진행되고 있어 인도의 선거제도와 정치문화가 궁금했습니다.
인도의 정치체제는 모든 권한이 총리에게 있는 의원내각제입니다.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로 임기는 5년, 3선 이상 연임이 불가능하고 하원의원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선출을 합니다. 상원은 각 주 의회 및 연방 직할지 의회에서 선출되는 233명 및 대통령이 임명하는 12명 등 총 245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으로 매 2년마다 ⅓씩 새로 선출합니다. 하원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며 각 주 및 연방 직할지 대표 543명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2명 등 총 545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5년입니다. 수상은 543명의 하원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최대 정당에서 총리직을 차지하며 내각을 구성하게 됩니다. 지금은 인도 인민당의 총재인 모디 총리가 2014년부터 정권을 잡고 있습니다.
인도의 선거제도를 보면 역시 '인도스럽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28개의 주와 9개 직할지로 이루어진 연방제로 유권자수만 무려 9억 명이고 참여하는 정당이 무려 2천 개가 넘습니다. 투표소가 100만 개(우리나라는 대략 6천 개), 선거관리요원만 우리나라 인구의 20%인 1천만 명에 달합니다. 우리나라의 33배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에서 선거를 치르다 보니 투표에만 40여 일이 걸리고 선거비용도 8조억 불로 미국의 대선 비용(7.4조억 불)을 넘는다고 합니다. 선거법에 투표소는 거주지로부터 2km 이내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으로 해발 4천 미터에 있는 겨우 12명의 유권자가 있는 라다크라는 선거구에 선관위 직원들이 산소통을 메고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일부 내전지역에 지뢰밭을 뚫고 가기도 하고 코끼리 떼가 우글거리는 밀림을 거쳐 배를 4번이나 갈아타고 24시간 이상을 걸려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전면 전자투표제를 실시한다는 점입니다. 문맹률이 70%로 높고, 6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투표용지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투표함 이동, 보관과 개표 집계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효율적인 투표를 위하여 오랜 기간 제도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왔고 2019년 제17대 총선부터 전자투표제도를 전면 시행하였습니다. 전자계산기처럼 생긴 투표기에 후보자의 이름과 정당명, 그리고 정당을 나타내는 심벌이 있어, 오른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투표절차가 끝나게 됩니다. 원하는 후보와 정당에 버튼을 누르면 확인 등이 들어오고, 다시 버튼을 누를 수는 없다고 합니다. 투표 결과는 중앙 서버가 아닌 각각의 전자투표기 안에 저장되고 4중 밀봉 절차를 거쳐 개표 날까지 보관됩니다. 개표일은 각 정당 참관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봉인이 뜯기고 투표기와 연결된 제어기의 결과 버튼을 누르면 후보별로 몇 표를 받았는지 나오고 이를 전산시스템에 입력하여 집계합니다. 인력으로 하면 일주일을 꼬박 하던 집계 절차를 불과 6시간이면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쉽게 결과를 보는 것도 편리는 하지만, 이번 대선처럼 다음날 새벽까지 땀을 쥐며 개표 결과는 보는 긴장과 스릴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전자투표제의 가장 큰 문제인 유권자 신원확인과 보안 문제인 거 같습니다. 우선 유권자 신원확인과 중복투표를 방지하기 위하여 특수잉크를 제작하여 유권자 손톱에 칠해 투표 여부를 확인합니다. 이 특수잉크는 비누나 세제로 지워지지 않고 약 한 달 동안 손톱이 자라야만 없어진다고 합니다. 보통 투표 인증 샷에 검지 손톱 사진을 보여줍니다. 선거인 명부가 체계적으로 작성되지 않아 이중 투표를 방지하는데 활용된다고 합니다. 또한, 전자투표기와 프로그램은 인도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인도 공과대학(IIT)에서 제작되었고, 높은 보안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합니다. 투표를 마친 투표기에 전자서명제도를 도입하여 개표일까지 열람이 불가능하도록 하고, 각 개표장에 투표기를 연결하여 표를 집계하고, 이를 다시 중앙에 입력하는 과정도 모두 철저한 확인과 보안시스템을 통하여 운영된다고 합니다. 해마다 인도 전역에 전자투표제도와 관련한 해킹대회를 개최하여 보안 문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한다고 합니다.
투표제와 더불어 정당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가 있고, 심지어는 남인도의 케랄라 지역에서는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인도가 의원내각제의 양당제도이고 연합정당을 구성하기 위하여 이합집산을 하다 보니 족보와 계보가 복잡합니다. 먼저 현재 집권당은 모디 총리가 수장으로 있는 인도인민당(BJP;Bharatiya Janata Party)입니다. 우파이고 민족주의, 힌두교가 중심인 정당입니다. 현재 야당은 1947년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고 이후 2013년까지 장기 집권했던 화려한 명성을 갖고 있는 인도 국민회의(INC;Indian National Congress) 당입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역사를 본다면 당연히 인도 국민회의(INC)가 당연히 우파, 민족주의, 영국을 반대해야 하는데, 실제는 이와 반대입니다. 국민회의는 친영파이고 반민족주의이고, 자식에게 세습하는 엘리트주의입니다. 간디, 네루 등 국민회의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영국에 유학을 하였고 자손들이 당선되는 행태가 지속되었고, 지방자치단체와 의회들도 점점 영국 유학파들의 엘리트 세속 정당이 되면서 ‘빛나는 인디아(brilliant india)’ 를 모토로 국민생활과 복지에는 관심이 없고 명분 속에서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정권이 바뀌게 됩니다. 현재 총리는 나렌드라 모디로 구자라트 기차역에서 차를 팔던 소년이 2001년에 구자라트 주지사가 되었고, 2014년 총선 때 정권교체에 성공하였습니다. 선거 당시 상대 후보는 국민회이당 네루의 증손자 라훌 간디였습니다. 혈통주의(엘리트주의), 사회주의, 세속주의적인 가치관들 속에서 점점 더 피폐해져가고 있던 유권자들은 빈민층 출신의 모디와 인도 인민당이 대변했던 보수주의, 권위주의, 힌두이즘, 포퓰리즘이 오히려 인도인들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몰표를 주었고, 국민회의는 채 50석도 되지 않는 군소정당으로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모디 총리의 모토는 ‘make in india’로 제조업 강국의 경제성장을 통한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지난해부터 지방선거가 진행되고 있는데, 작년까지는 코로나 방역책임으로 인민당의 표를 잃고 있었으나, 지난 3월 10일 마친 최근 우다르프라데시주, 펀잡 등 5개 주에서 승리함으로써 2024년 총선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합니다.
21년 기준으로 인도의 민주주의 지수(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발표)는 10점 만점에 6.91점으로 180여 개 국가 중에서 46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8.16점으로 16위) 평가항목을 보면 5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인도는 ①선거절차 ②정부기능, ③정치 참여도는 평균 이상의 높은 점수인데 비하여 ④정치문화(5.0점, 한국 7.5), ⑤시민자유(6.1점, 한국 7.9)는 낮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카스트라는 신분제도와 높은 문맹률, 그리고 종교 때문에 아직 여러 가지 문제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선거 참여가 높고 군부 쿠데타가 없다는 점도 특징이기는 하지만, 아직 인도는 일부 극렬주의도 있고, 금품선거, 종교 간 갈등, 신분간 갈등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갈등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농민들이 많아 양파나 감자 가격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정당들의 활동과 결과에 따라 유권자의 표심이 반영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특징이라고 본다면 인도도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는데 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인도의 정치를 보면서 느낀 점은 간디나 네루의 자손들이 보여주는 상징적인 엘리트주의나 명분보다는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실리를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민주화는 90년 초부터 이루어진 반면, 인도는 14년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인도는 2014년에 전면 교체가 되었고, 2019년에 재집권에 성공을 하였습니다. 또한, 투표제도와 관련하여 전자투표제를 운영하는 부분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이나 여건을 보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2천여 개의 정당과 유권자들이 신뢰할만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킹을 방지하기 위한 전국적인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나, 중복투표 방지를 위한 특수잉크를 활용하는 등의 노력은 인도가 대국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투표제도와 같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느끼는 답답한 행정체계도 시원시원하게 변화되었으면 합니다.
2022년 3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