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장례문화
지난 3월말에 사랑하는 어머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급히 귀국을 하긴 했지만 입관은 못보고 코로나로 장례 일정이 지연되어 화장하고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 옆에 모셨습니다. 어머님의 그늘 아래 보낸 50여년의 시간을 2,3일 만에 정리하고 떠나보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에는 모두 집에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안방에 시신을 모시고 염을 합니다. 음식을 만들어 조문객을 대접하고 종이를 오려 접어 꽃상여를 만드는 등 모든 일을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삼베옷을 입은 상주들은 마루에서 3일, 5일을 꼬박 울며 조문객을 접합니다. 지금도 아버지가 삼베옷을 입고 곡을 하고 망연자실, 조문객이 없을 때 마루에 기대어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장례식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묘지까지 갑니다. 마을 어른이 여자들 곡소리가 작다며 역정을 내기도 하고, 상여를 멘 사람들은 언덕을 높아 못 올라간다며 노잣돈을 더 내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도 생생합니다. 만장을 앞세운 화려한 꽃상여와 장송가를 부르면서 남아있는 사람과 가시는 분 모두 한을 푸는 축제와 같은 자리였다고 봅니다. 지금은 상조회사의 도움으로 더 편하게 상을 치루고 조문객을 모십니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많은 추억들을 회상하고 공유하며 슬픔을 나누는 자리는 옛날의 장례식인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코로나로 끔찍했던 인도의 화장장 장면이 생각납니다. 나라마다 독특한 장례문화가 있지만 넓은 광장에 나무를 쌓고 화장하는 뉴스장면을 보면서 인도의 문화도 궁금했습니다. 인도의 화장은 종교적인 면이 강합니다. 내세와 윤회를 믿는 힌두교의 교리에 따라 현세를 살고 있는 육신을 모두 태워야만 혼이 하늘로 가서 다음 생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인도의 장례절차도 망자를 보내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방식이나 절차는 우리와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울음의 행사이고, 인도는 환희의 행사인것 같습니다. 우리는 초상집에 곡소리가 적게 나거나 나지 않는 경우에는 불효라고 억지울음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인도는 이번 생을 잘 마무리 하여, 영혼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남은 육신은 바다나 강으로 흘려보내는 일련의 행위가 홀연히 이번 세상을 끝냈다는 축복의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3일장이나 5일장의 장례기간을 두어 망자와의 이별의 시간을 가집니다. 가족묘지나 선산에 안치하거나 수목장처럼 나무에 재를 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삼우제, 사구제 등 장례 후에도 기원해주고 해마다 기일이 되면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인도는 한 사람의 생을 마치고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망후 3시간부터 화장이 가능합니다. 장남을 중심으로 남자 친척들 위주로 대나무로 만든 들 것에 시신에 흰 천을 덥고(여자는 붉은 천) 화장장으로 간다고 합니다. 가는 도중 장남이 돈이나 꽃을 뿌리는 경우도 있고, 힌두교의 신으로 인간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을 주관하는 ‘램(ram)신은 위대하다.’라는 경쾌한 가락의 주문을 외친다고 합니다. 화장 후 3일이 지나면 수골을 해서 강이나 바다에 뿌리고 11일차가 되면 ‘슈댜’라는 천도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인도의 성지인 바라나시라는 곳이 있습니다. 삶의 죽음의 도시라고 합니다. 바라나시에서 화장을 하고 남은 재가 갠지스 강에 뿌리는 것을 인도 사람들은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합니다. 죽은 곳에서 바라나시까지 시신을 옮기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라나시에 와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인도 바라나시 풍경 (출처 : 위키피디아)
두 번 째로 화장 문화와 절차입니다. 원래 우리는 염을 해서 좋은 묏자리를 골라 매장해야 시신도 잘 썩고 조상님들이 편안하여 그 후광으로 자손들이 덕을 본다는 매장설이 주류였습니다. 영화 박희곤 감독님의 '명당'에서 흥선대원군(지성)이 '그 터는 이제 내가 가져가야겠소' 하면서 묘지를 갖고 운명적인 싸움을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묘지의 터를 장례와 가문의 영광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여깁니다. 일생의 노력과 무관하게 단순히 죽어 누워있는 땅에 따라 복이 오고 운이 트이는 원리는 제가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부분입니다. 화장장에서 2시간 만에 한줌의 뼈가 되어 나오는 허무함과 신속한 절차를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인도는 더운 날씨인 만큼 빠르게 시신을 처리해야 하고 14억이나 되는 인구수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땅이 넓다고는 하나 북부 산악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농사를 짓는 평야지대라 화장 문화가 일찍부터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신, 가스나 기름이 아닌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전통방식의 나무(주로 망고나무)를 이용한 방법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화장장에 도착하면 시신을 강물에 한번 씻겨 나무를 남자는 머리부터, 여자는 발부터 차곡 차곡 쌓습니다. 장남이 불을 붙여 화장을 시작합니다. 인도의 특이한 문화중 화장이 마친후 장남이 직접 망자의 두개골을 깨는 절차가 있다고 합니다. 장작의 온도가 높아 깨지면 괜찮은데, 만일 온도가 낮아 깨지지 않으면 영혼이 갇혀 있어 자유롭게 하늘로 올라갈수 없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행위라고 합니다. 의미는 이해가 되지만, 섬뜻한 행위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인도 장례식 풍경 (출처 : 위키피디아)
세 번 째는 남성위주의 장례문화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도 제사에 여자들이 참여를 못하는 지역이 있는 것을 보면 장례에서 차별은 국가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 동네 어르신들 장례식 때 어머니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도 소복을 입고 울며 불며 곡을 하다가도 틈틈이 제사음식을 마련하고 친척과 동네사람들의 식사 준비 등 정신없이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인도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장장에는 남자들만 참여하고 여자들은 집에 남아 고인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사티(sati)라는 풍습을 보면서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티’는 남편이 먼저 죽는 경우, 부인이 화장할 때 같이 따라 죽는 것입니다. ‘사티’는 힌디어로 ‘용감한' 또는 '정숙한 여자’를 뜻합니다. 힌두교 3대 신이고 파괴의 신을 뜻하는 ‘시바’신의 첫 번째 부인의 이름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사티’는 아버지인 ‘다크사’의 뜻을 어기고 시바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다크사가 남편인 시바신을 배척하고 무시하였다고 합니다. 친정아버지가 시바신을 빼고 주최한 축제 현장에서 ‘사티’ 는 남편의 정당함을 알리기 위하여 불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열녀문과 비슷한 가문의 영광을 위한 과부들의 희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열녀문을 내는 것과 같이 가문의 영광이요, 신당도 지어주고 막대한 기금도 준다고 합니다. 남존여비가 심한 인도에서 남편이 먼저 죽는 부인은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오명과 더불어 재혼도 하지 못하고 하얀 옷만 입어야하고 머리를 빡빡밀어 대머리로 살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비굴한 삶을 사느니 그냥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좋겠다는 묵시적인 무서운 풍습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보면 역시 재산문제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모든 재산이 남은 첫 번째 부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본가 친척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다른 친척과 동침을 요구하여 친척으로 남게 하는 것도 있지만, 암묵적으로 화장을 강요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화장하고 난 후에 비싼 장신구를 가져가는 브라만 계급과도 결탁되어 미망인들의 희생만 강요하며 제도가 유지되어 온 것 같습니다. 문헌으로 보면 대략 2천년 이상 행해져 왔고, 1802년에 영국인 캘빈의 조사에 따르면 캘커타 시내 반경 50킬로 미터 안에서 438명의 과부가 사티로 희생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1826년에 비로소 법으로 금지가 되었으나, 2006년 BBC 보도에 따르면 40대 여성이 남편을 따라 불길에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보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동네 사람들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신성하게 여기며 화장 후 남은 재를 만져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인도 사티 제도 - 삽화 (출처 : 위키피디아)
인도에 살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전통을 따르는 끈끈한 DNA입니다. 민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인도사람들이 힌두교에 따라 홀리나 디왈리 축제를 지금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일년내내 힌두교 3대의 신인 브라마(창조의 신), 비슈누(유지의 신), 시바(파괴의 신) 생일부터 중요한 사건을 국경일로 정하고, 의미에 맞는 행사를 지금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참여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생활이 삶을 깊게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바쁘다는 핑계로 편한 것, 쉬운 것, 간단한 것들만 추구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편한 것을 찾아서 옛날 전통을 따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인도처럼 끈끈한 동질체의 문화가 나쁜 것인지는 잘 판단이 잘 서지는 않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알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고, 삶의 방법은 다르지만, 삶의 목적은 비슷합니다. 마찬가지로 인도 사람들이 죽음을 바라보고 망자를 보내는 행위도 나름 전통과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슬픔을 극복하고 위안을 얻는 지혜를 얻고 있습니다. 죽음은 사람에게 있어서 극복하기 어려운 커다란 벽입니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형식과 절차가 존재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어머님이 없는 세상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막상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지만, 어머님이 주신 사랑을 더 큰 내리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어머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이제는 고통없이 하늘나라에서 두 분이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2022년 4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