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결혼문화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은 무엇일까요? 인륜지대사라는 말처럼 바로 결혼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인이 되고, 만나서 가족을 이루고 다시 후대를 이어가는 것. 단순하지만 인류는 반복을 거치면서 오늘의 문명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나절 정도 결혼식에 참석하여 부조하고 혼주에게 인사하고 신혼부부의 출발을 기원하고 축하해주고 식사를 하는 것이 주된 행사입니다. 가끔 신랑이나 신부들의 공연도 재밌게 보고 주례 선생님의 좋은 말씀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비하여 인도의 결혼식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일입니다. 우선 기간만 보면 최소 3일에서 7일 동안 이루어지고 비용도 자신들(신랑&신부)이 벌 돈의 20%이상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마 인도의 결혼식 문화를 온 세상에 알린 것은 지난 18년 12월에 뭄바이에서 있었던 아시아 최대 갑부 '무케시 암바니' 회장의 딸 '이샤 암마니'의 결혼식이었습니다.
뭄바이에 있는 2조 2천억원이나 되는 27층 저택에서 약 1억달러(1,300억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날 결혼식에 토니블레어 영국 총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등등 전세계 주요 인사가 초청되었고 비욘세가 축하공연을 하는 정말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힘든 성대한 결혼식이었습니다. 화려한 결혼식은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일반 서민들의 결혼도 비용과 행사 규모만 다를 뿐 자신이 가잔 것 이상을 쏟아 붓는 아주 큰 행사라는 점은 같습니다. 결혼이 단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아닌, 가문 간 결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결혼식 규모가 가문의 체면과 직결되어 자신의 범위를 넘어서는 고급 호텔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인도의 결혼 사업 시장은 약 500억 달러(한국 돈으로 자그마치 65조원)나 되는 천문학적인 규모라고 합니다.
인도의 결혼식은 길지만 행사는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를 주인공으로 친척들과 친구들의 성대한 잔치가 대부분이고 실제 결혼식에 소요되는 시간은 30분 이내입니다. 신부 집이나 신부 측에서 정한 장소에서 파티와 결혼식이 이루어지고 결혼식을 마치게 되면 신부를 데리고 신랑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1일 차는 상기트(sangeet)라고 신부측 가족, 친지들의 모여 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2일 차는 메헨디(mehnd)라고 하여 액운을 물리친다는 문신을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문신은 인도의 축제나 결혼식 전날 신랑 신부에게 해주는 것인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손이나 발을 사용할 수 없어 친척들이 밥도 먹여줍니다. 또한 결혼을 앞둔 양가의 친척들의 얼굴도 익히고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가 된다고 합니다.
3일 차가 본격적인 결혼식입니다. 신랑이 신부 집으로 와서 성대한 잔치를 치르며 결혼식을 올리고 파티를 합니다. 델리에서 한밤중에 주로 백마를 타고 번쩍이는 장대를 세우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지나가는 시끌벌쩍한 행렬을 보게 되는데, 바로 신부 집을 찾아가는 신랑이 행차 모습입니다. 신부측에서 잡은 호텔이나 별도 결혼식에서 끝나고 신랑집으로 와서 다시 잔치를 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도가 넓어 사람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성대하면서도 친척, 지인, 동네사람들이 모두 참여하여 축복해주는 자리입니다.
결혼 절차는 우리나라 전통 혼례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는 네 단계로 진행되는데 ①서로 결혼의사를 타진하는 의혼(議婚), ②혼인 날짜를 정하는 납채(納采), ③예물을 보내는 납폐(納幣), ④혼례를 올리는 친영(親迎)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단계마다 복잡한 절차가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나라도 가족들에 의한 중매 결혼이 대부분이었고, 신랑이 신부 집에서 혼례를 올린 첫날 밤을 보내고 다시 신랑 집으로 오는 순서였습니다. 사극을 보면 짖궃은 동네 사람들이 첫날 밤 엿보기 행사와 신부의 고향 친구들이 신랑을 대들보에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는 '동상례' 행사도 있었습니다. 절차는 다르지만 새로운 신부를 모셔오기 위해서 다양한 절차와 격식, 그리고 축하해주는 큰 행사라는 점에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제가 근무하는 대사관 실무 직원인 에디슨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참석을 못했지만 제가 결혼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노라며 약간의 부조도 하고 설명을 부탁하니, 흔쾌히 사진을 보여주면서 도와주었습니다. 에디슨은 성당에서 신부님이 주도하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에디슨의 사진을 보면서 실제 결혼식 장면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투메릭(tumeric)이라고 결혼식에 앞서 강황 가루를 바르는 행사인데 할디(haldi)라고도 합니다. 건강을 기원하고 신랑 신부의 마음과 영혼을 정화한다는 의미도 있고, 새로운 삶을 축복하다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사진 왼쪽에 있는 투박하신 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에디슨입니다.
이틀차 행사는 바로 메헨디(mehndi)라는 행사로 두번 째 행사는 바로 헤나(henna)라고 손에 문신을 하는 과정입니다.
헤나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하는데 열대 관목인 로소니아 이너미스의 잎을 따서 말린후에 가루로 만들어서 손과 발을 포함한 몸의 일부에 문신처럼 디자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식뿐만 아니라 디왈리 등 축제때도 사용하고, 몸의 열을 낮추어 주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 11월 디왈리 축제때 여직원의 손모습을 보고 조금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섬세하고 다양한 문양에 액귀를 물리치고 축복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결혼식, 생일, 명절 등 특별한 날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본격적인 결혼식입니다. 성당 결혼식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신랑고 신부가 입장하고 신부님이 진행을 합니다. 특이한 것은 신랑과 신부가 실제 현장에서 결혼증명서 서류에 직접 사인을 하더군요. 가족들이 사진을 찍는 것이나 표정들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나면, 차를 타고 파티장으로 이동을 합니다. 친척과 지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흥겨운 파티가 계속됩니다. 저도 아직 결혼식에 참석을 해보진 못했지만, 참석한 사라들의 말에 따르면 댄스의 화신처럼 밤새도록 노는 데에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에디슨의 경우에는 힌두교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인거 같은데도 사진으로 보는 파티장의 웅장함에 놀라웠고, 미니바에 별도 바텐더가 있는 것도 색다릅니다. 잘 차려 입은 친척들과 지인들의 축하도 대단했다는 후문입니다.
인도의 웅장하고 화려한 결혼식 이면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우리(dowry)라는 지참금 제도입니다. 이유는 결혼한 이후 신부가 신랑집에서 사는 비용을 산정해서 신부 측에서 신랑에게 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혼수 문화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는 선택 사항인데 비하여 인도는 결혼에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대략 IT 종사자 등 전문직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한화로 약 4천만원이 필요하고, 신분별로 신부의 아버지가 최소한 10년 동안 벌어야 할 액수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일명 '딸을 가진 아버지의 허리' 라는 속담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여자의 연령, 남자의 직업, 신분 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다우리를 계산해주는 앱도 있습니다. 다우리로 인하여 살인 사건도 발생하고, 약혼을 마친 신부가 파혼을 당하는 등의 이유로 딸 대신 아들을 선호하는 행태가 나타났습니다. 최근에 인도에서 출산한 대사관 직원의 말을 들어보면 의사가 절대로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지 않고, 외국인이고 내년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단호하게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다우리 제도는 1961년 법으로 금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딸을 낳으면 가정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결혼의 전 단계인 신랑과 신부가 만나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나오는 '내 눈에 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않된다.' 라는 말은 없다고 합니다. 90% 이상이 부모님의 중매로 만나고 개인 간의 결합보다는 가문과 가문의 결합으로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대사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부모님이 선택한 사람과의 결혼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하면 어쩔? 하고 물어 보려다가 말았습니다. 인도의 결혼과 관련된 통계를 보니 더더욱 놀랍습니다. 90%이상이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를 선택, 결혼한 부부의 90%이상은 남편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혼율이 1%라는 점입니다. 인도가 이혼을 절대 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권리가 부여되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그냥 참고 산다.' 라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절대 복종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선택이 좋은지, 개인의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착찹하였습니다.
우리가 인도 결혼 문화를 이해할 수 없듯이 반대로 인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도 있습니다. 바로 현금을 내는 부조 문화와 파티없는 얼렁뚱당 결혼식입니다. 인도에서는 현금으로 부조를 하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나라는 결혼 비용 분담과 상부상조 방식으로 부조를 합니다. 인도에서도 파티와 동네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것이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복을 받는다는 관습으로 하고, 이러한 신성한 행위에 돈을 받는 것은 좀 거시기 하다 라는 입장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냥 집으로 간다? 이것도 인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신랑이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 저녁에 신부집에 도착하면 결혼식은 빠르면 2-3시 새벽녘에 끝나는 경우도 있고, 그 다음날 해가 뜨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중간에는 축하해주고 춤추는 파티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결혼식에 여흥이 없는 파티는 우리나라 말로 홍어가 빠진 잔치라고 합니다.
인도의 결혼 문화를 탐구하면서 이것 저것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전통과 관습을 제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몇몇 블러거들이 쓴 인도에 대한 글을 보면서 인도를 사랑하지 않는 큰 이유로 여성들의 열악한 인권을 들고 있습니다. 인도 결혼식의 화려함과 웅장함 속에 숨어있는 여성들의 슬픔이 눈에 보입니다. 또 가문, 지참금, 화려한 파티 등 인도의 결혼식의 뼈대를 이루는 외형을 모두 빼고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의 관점입니다. 인도에서 부부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배우자를 선택한 사랑의 힘으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의지가 아니라, 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기준을 따르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윤회의 숙명과 카르마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사는 인도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젊은층에서 결혼에 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다우리 문화도 없애고 과도한 비용도 줄이는 등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보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인도와 한국의 모든 (예비)부부들에게 행복을 기원합니다.
(참고로 5.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의 날입니다.)
2022년 5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