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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살이-열세달차(22.9월)

재벌들의 천국 - 인도

by 소전 India

지난 8월에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의 자연은 참 맑고 곱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하늘색은 인도보다 100배 이상의 채도로 환하였습니다. 산의 초록과 파란 하늘이 맞닿은 색의 조화도 놀라왔습니다. 폐 속까지 들어오는 한국 공기의 신선함이 좋았고, 뱃속 깊은 곳에서 느끼는 육즙의 맛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도살이 1년을 버틴 대견함과 다시 돌아갈 우리나라가 있다는 안도감을 갖고 다시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인도는 재벌들의 천국입니다. 지난 9.16 CNN비즈니스에 아다니 그룹의 총수인 ‘고탐 아다니’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를 제치고 세계 2위 부자로 등극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고탐 아다니’는 올해초 전 세계 부자중 14위로 출발을 했지만, 불과 9개월 만에 에너지 가격 폭등, 주가 변동 등으로 순위가 2위로 껑충 뛰었습니다. [참고로 세계 1위 부자는 엘론머스크가 2,758억원(한화 약 385조원)의 재산이고, 그 뒤로 아다니가 1,469억원(한화 약203조원)의 재산을 소유함] 아다니 그룹은 1988년에 창립된 인도 최대 물류, 에너지 기업입니다. 모디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에 소재하고, 항만, 공항운영, 가스 자원개발 등 에너지와 유통산업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포스코와 합작으로 구자라트 문드라 항구에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고탐 아다니’ 회장은 1962년 생으로 선대의 상속이나 증여없이 본인이 창립하고 성장한 1세대 자수성가 기업인입니다. ‘고탐 아다니’ 이전 인도 최고의 부자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회장인 ‘무케시 암바니’이었습니다. 무케시 암바니는 작년에 아시아 최고 부호로 1천억 달러 클럽에 가입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에 뭄바이에 있는 27층 짜리 대저택인 안탈리(antilla)에서 1조원대의 초화화 결혼식을 개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그의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5천 2백만 달러 짜리 전용 비행기를 사주었다고 크게 보도된 적도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부자라는 개념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인도에서는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호화 결혼식이나 전용 비행기 선물이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특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도 사람들의 행동도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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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니 그룹 계열사 현황 (출처 : group companies.in)



인도에는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30억원 이상을 상속하거나 증여하는 경우에 그 절반인 50%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인도도 1955~1985년 까지 개인이 사망할 경우 상속되는 재산에 과세하는 ‘유산세(Estate Tax)’가 있었습니다. 세수증액 효과에 비하여 징세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여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와 신자유주의의 확대에 따른 경제 자유화를 가로막는 이유로 폐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상속세를 다시 도입하려는 시도가 매년 있기는 하지만, 번번이 기득권의 방해로 실패한다고 합니다. 현재 인도의 재벌들은 인도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는 최상의 계층입니다. 공식 용어로는 ‘코퍼레이트 그룹(corporate group)’ 혹은 ‘모노폴리 하우스(monopoly house)’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족에 의하여 지배를 하고 있고 다양한 산업에 진출을 할 수 있습니다. 사업영역도 제한이 없고 독과점에 대한 제재도 없습니다. 인도 주식 시장 ‘센섹스 지수(Sensex Index)’를 구성하는 30개 기업 가운데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재벌들의 이름도 특이합니다. 타타그룹, 아다니 그룹처럼 출신가문과 일족의 이름을 기업명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최씨 운송, 안동권씨 패션, 김해김씨 출판사 라는 방식입니다. 출신가문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은 바로 형제, 친척들이 재벌의 구성원이라는 뜻이고 그만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강한 유대감이 있습니다. 또한 인도 사회를 촘촘히 감싸고 있는 카스트 제도가 재벌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가족, 친척들간의 경영이 정체성, 동기부여, 그리고 상속까지 이어지는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만들 수 있는 든든한 기반으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인도 재벌은 시대적으로 보아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타타, 릴라이언스 등 식민지 시대부터 상인 가문에서 출발해 대를 이어 내려온 전통 재벌과 아다니 등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에 부상한 신흥 재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제 정세와 주가 변동이 심하여 정확한 분석은 어렵지만,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는 전통 재벌들이 아직 좀 더 우위에 있다고 합니다. 전통재벌들과 신흥재벌의 발전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전통 그룹의 대표 주자인 타타그 룹의 부의 원천은 아편 전쟁이라고 합니다. 전쟁 당사자는 영국과 중국이지만, 인도에서 아편을 만들고 대금을 챙기는 방법으로 부를 쌓았습니다. 현재 중국과 인도의 원수지간이 된 것도 아편 전쟁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편 전쟁이 끝나갈 무렵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인한 면화산업의 인식과 공급부족으로 인하여 면화 수출로 더 많은 부를 쌓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세계 1차, 2차 대전 당시 타타제철은 철강 부족을 활용하여 4배 이상의 자산을 불렸다고 합니다. 여기에 1947년 인도 독립당시 영국이 철수하면서 많은 기업들을 흡수해서 발전의 중흥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아다니, 인포시스 등 신흥기업들은 정보통신 기술(IT)와 생명공학(BT)기술 등 신기술을 활용하여 성장하는 재벌들입니다. 인포시스(infosys)는 IT인프라 서비스,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컨설팅을 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인도내 시가총액 4위에 있습니다. 인포시스의 전(前) 회장인 ‘마라야마 무르티’는 ‘사람이 장사’라는 모토로 최고수준의 인재를 확보하고 사내 교육시설을 마련하여 교육시키고 최상의 근무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도최고의 제약 회사인 선 파마슈티컬 회장인 ‘딜립 샹비’의 성공 가도도 눈길을 끕니다. ‘달립 샹비’ 회장은 의약품 도매상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다가 특허가 만료된 복제약을 만들면서 성장을 했고, 오직 제약에만 집중하여 거대한 제약회사를 이루었습니다.

img.jpg 인도 40대 기업 리스트 (출처 : marcketing mind)


재벌들의 화려한 성공 뒤로 정경유착의 검은 커넥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도는 정경 유착이 아닌 정경 일체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이를 규제할만한 장치도 없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전통 재벌들이 한 손으로는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고 다른 손으로는 영국 정부에게 헌납하여 작위를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타타 가문의 경우에는 식민지의 불만을 회유하기 위하여 뭄바이에서 개최된 ‘인도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 1885년)’을 통하여 부동산에 투자하여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습니다. 타타가문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이용하여 국민회의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국민회의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민족주의에 투철한 애국적자로 인정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타타가 영국 정부에 헌납한 돈은 간디의 독립운동에 지원한 액수 보다 훨씬 많았고 그에 대한 댓가로 타타 가문의 수장인 ‘라탄 타타’는 영국에서 살다가 작위를 받았고 죽어서 영국에 묻혔다고 합니다.


인도는 독립한 후에 국가주도의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혼합 체제를 표방했습니다. 막강한 자본력과 든든한 인맥을 가진 재벌들이 국가 주도 계획경제의 입안자로 등장을 하고 집행자로 참여를 해서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교통, 통신 등 사회간접을 건설하는 공공기업들을 기존의 민간기업 인수없이 새로운 국영기업을 신설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국내 산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재벌들과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국가 주도 계획경제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부패와 비효율성입니다. 도로건설 비용이 부정부패의 뒷돈으로 들어가서 부실공사가 되고 비만 오면 잠기고 여기 저기 구멍이 생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부동산만 보더라도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는 상황에서 임대료를 통한 부의 축적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인도 재벌을 지역적, 종교적 관점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시 조선시대 송상, 만상, 경상이라는 아시나요? 개성을 중심으로 한 송도상인을 줄여서 ‘송상’, 압록강 인근의 의주에 터를 잡고 청과 교역하는 상인을 줄여서 ‘만상’, 한강을 기반으로 쌀 유통을 독점한 경강상인을 줄여서 ‘경상’이라고 합니다. 근대화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 3대 상인들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인도는 아직도 줄기가 남아 번창하고 있습니다.

ㅇ 마르와리 상인(marwari) : 대표기업- 아디티야 비를라

ㅇ 구자라티 상인(Gujarti) : 대표기업 -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ㅇ 파르시 상인(parsi) : 대표기업 - 타타


3대 상인을 부르는 어미인 ‘i’는 ‘~의 사람’ 사람이라는 뜻으로 마르와르 사람, 구자라트 사람, 파르시 사람이라고 송상, 만상, 경상 등과 같이 지역출신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보면 됩니다. 마르와리는 인도의 서북부인 라자스탄 출신의 상인집단입니다. 대표적인 말로 ‘기차가 가지 못하는 곳에 황소와 수레가 가고, 황소와 수레가 가지 못하는 곳에 마르와리가 간다’ 마르와리란 사막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비를라 가문, 미탈 가문, 바자이 가문, 아그라왈 가문 등이 있습니다. 구자라티는 구자라트에 지역기반을 둔 상인들로 전반부에 설명한 초호화판 회장님인 무케시 암바니가 대표주자입니다. 구자라트는 앞서 말한 대로 모디 총리의 고향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부자인 주로 지정학적으로 인도 서북부 지역으로 해안가를 두고 가장 교역이 활발했던 곳입니다. 구자라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일단 돈이 제 주머니에 들어오면 안 나오는 것과 확신이 서면 몰빵할 정도의 공격적인 투자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구자라티는 인도상인의 사관학교라는 말처럼 검역과 실용, 리스크를 즐기고 현장에 순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img.jpg 구자라티 기업들 (출처 : brandyuva.in)


파르시도 구자라트 지역이 본거지이지만 다른 민족이기 때문에 따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파르시’는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페르시아(현재 이란)에 살던 조로아스터코(배화교)를 믿던 원주민들입니다. 소수 민족이 인도 대륙에 정착하여 영국의 식민지 시절과, 인도의 독립 시기와 인도 경제발전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인도에 사는 사람 수는 6만명 정도로 적지만 유대교와 같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자녀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동족간 결혼, 돕는 문화 등은 계속 유지한다고 합니다. 유명한 팝그룹인 퀸의 보컬로 유명한 ‘프레디 머큐리’도 파르시라고 합니다. 마르와리, 구자라티, 파르시 등이 오랜 역사를 두고 성장해온 것을 보면 이들의 도전정신과 탁월한 식견에 따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인도 재벌의 호화스러움과 어두운 면을 보며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얘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인도 북동부 자라칸트주의 잠셋푸르입니다. 타타 스틸이 자리잡은 이곳은 타타의 창업주인 ‘잠셋지 타타’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었습니다.(푸르는 힌디어로 ‘마을’을 뜻함). 70만명이 사는 잠셋푸르는 두 개의 골프코스, 공항과 수영장, 750개 병상을 소유한 병원 등이 있고 민간기업인 타타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기관은 출생‧사망 신고를 받는 사무실 한 군데가 있고, 나머지 상하수도, 도로, 교통, 의료 등은 모두 타타가 운영한다고 한다고 합니다. 이 도시의 1년 유지비용은 약 6억 루피(한화 약 100억원) 정도를 부담하는 것을 보면 재벌의 다른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재벌들의 기부 행위도 많습니다. 글로벌 IT기업인 Wipro의 소유주인 아짐 프렘지(Ajim Premji)는 빌게이츠, 워렌버핏에 이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 기금으로 한화로 약 2,000억원 이상을 기부하였고, 지금까지 200억 달러 이상의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잠셋푸르 이외에도 타타 그룹은 코로나 구호 및 보건분야에 약 3,000억원이상을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도 재벌의 기부 문화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돈은 추구할 최고의 가치지만, 수천 년 체험을 통해서 돈의 뿌리를 알고 내세의 더 좋은 환생을 기대하는 덕목으로 활용한다고 합니다. 돈을 버는 일도 쓰는 것도 하나의 구도 과정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잠셋푸르 도시 전경(출처 : wikipidia)


인도 재벌의 역사를 보면서, 살아있는 것에 대한 숙명과 운명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재벌의 천국이지만, 흥하는 재벌도 있고, 형제들의 싸움으로 망한 재벌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표명하고 규모의 경제와 다른 나라들과 경쟁을 위해서는 강한 경제와 튼튼한 기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벌들도 나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도전과 경쟁의 결과로 지금 잘살고 있고, 각 재벌들의 철학에 맞게 경영하고 사회에 막대한 기부로 환원한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글로벌 경제가 아닌 소소한 개인의 삶 속에서 바라보는 인도 재벌은 거대한 공룡같은 느낌입니다. 부자들은 더 부자로 살고, 가난은 계속해서 대물림 되어 부와 가난 사이를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란 벽을 느꼈습니다. 카스트의 결정론적인 신분제도로 개천에서는 용이 절대 나올 수 없는 사회적 구조도 큰 문제이지만, 종교론적인 윤회론도 그 벽을 두텁게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현세의 삶이 미래로 연결된다는 종교적 믿음 때문에 순응하며 사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끝.

22.9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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