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불교가 없다.
인도에 온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인도 생활은 늘 불안합니다. 식당에서 카드결제가 되는지, 정전이 되지는 않는지, 먹고 설사는 하지 않는지, 차가 고장은 나지 않는지, 늘 걱정의 연속입니다. 시끄러운 소음, 길가의 쓰레기, 소의 응가 냄새, 땡볕에 활짝 열리는 땀샘 등 신체의 감각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아직도 문화적 정신적 편차는 멀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탈 없이 1년을 보낸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합니다. (한달살이를 보고 보내주시는 응원과 격려 덕분입니다.)
[아잔타 석굴 (26번) 전경 (필자 직접 촬영)]
인도에 오기 전부터 몹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것이 사실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코로나로 통제 조치가 해제되고 나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인도 남부의 아잔타 석굴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암석으로 된 넓은 협곡에 절벽을 깍아 28개의 석굴을 파고, 석굴 안에 방을 만들고 방안에 불상을 만들고 천장과 벽에는 그림까지 그려놓아 부처님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이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외계인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에 생명을 불어넣듯이 부처님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 북쪽에 있는 다람살라의 달라이라마 사원을 보면서 좁고 척박한 땅에 절을 세우고 불경을 암송하고 기도하는 불교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도에 불교의 흔적은 있지만, 불교신자의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인도의 불교신자는 약 900만명으로 14억에 달하는 인도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참고로 인도의 종교분포는 힌두교가 9.1억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보면 불교의 융성함은 과거 유적에서만 그 흔적을 발견할 있었습니다. 종교는 굉장한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만 보더라도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이 500년간 지속되었음에도 현재 국민의 17%가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발생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아직 건재한데, 하물며 불교의 발생 국가이고 아잔타 석굴과 같이 찬란한 유산을 가진 불교가 인도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것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역사와 인도의 역사 - 필자 정리]
우선 불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은 기원전 624년에 인도 북동부에 있는 카필라국(현재 네팔 룸비니)에서 태어나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득도했습니다. 그 이후 40년간 설법을 하다가 기원전 544년에 8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당시는 아리아인의 베다문명 시대로 브라만 종교와 카스트 제도가 대세였습니다. 브라만이라는 창조주를 중심으로 일부 선택받은 사람만 신과 통할 수 있고, 철저하게 계급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닫힌 사회에서 창조주를 믿지 않고 사람이 수련하면 도를 깨우칠 수 있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사상은 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급진적인 혁명적인 사명입니다. 열반이후 약 200년 동안을 부파불교 시대라고 합니다. 다양한 문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기반으로 연구를 합니다. 기원전 322년에 불교는 위대한 스폰서인 마우리아 왕조의 3대왕인 아소카 대왕이라는 든든한 스폰서를 만나면서 불교는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발상지인 인도뿐만 아니라 스리랑카를 비롯한 이웃나라까지 전파가 되면서 불교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기원전 215년에 마우리아 왕조가 쇠퇴하고 인도는 다시 여러 왕국으로 갈라져 흥망성쇠를 반복하게 됩니다. 마우리아 왕조부터 굽타왕조가 들어서기 까지 약 800년 동안 불교의 세력은 꾸준하게 유지됩니다. 달이 차면 기울 듯이 불교는 전성기의 풍요를 이어가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정치적으로 배경이 화려하고 든든한 후원자가 주는 시주로 막대한 땅과 부를 보유한 종단들은 깊은 숲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숲에 절을 세우고 부처를 만들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반 백성들은 읽지도 못하는 어려운 산스크리트어로 체계화합니다. 백성들은 신을 찾아가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깊은 산이 있어 찾아가기도 어렵고, 간단하게 신께 복을 비는데 연기설, 사성제와 같은 복잡한 이론까지 이해를 해야해서 기도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불교는 점점 더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불교의 무소유 정신 또한 생업을 종사하는 백성들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블교 쇠락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바로 불교의 힌두화입니다. 불교가 백성들과 멀어지면서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불교는 힌두교에 있는 신들과 제례 행위를 차용해옵니다. 힌두교에 많은 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보살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수련과 명상을 통한 개인의 깨달음보다 신에게 기도하며 복을 비는 기복신앙으로 변질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교와 힌두교 사이에 차이가 없어지고, 관혼상제 등 생활종교로 깊숙이 침투한 힌두교릴 믿든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불교는 내리막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여기에 이슬람교의 불교탄압이 결정타를 날립니다. 712년 우마이야 왕조의 ‘무하마드 반 카심’이 인도 서북부의 펀잡지역을 정복하면서 이슬람교가 인도에 전파됩니다. 그후 1526년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굴제국이 탄생하기 전까지 인도 전역에서 이슬람 국가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불교는 탄압을 받게 됩니다. 나 이외의 신을 믿지 말라는 코란의 사명에 따라 이교도인 불교의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1203년에 동인도 위크라마실라 사원에 있는 8천명 승려와 오단타푸라 사원에 있는 2천여명의 승려들을 살해함으로써 불교는 인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도의 불교는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에 없어진 종교가 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종교적 관점에서 본 불교의 쇠퇴원인도 흥미롭습니다. 큰 흐름으로 보면 힌두교는 인류 역사와 같이 시작되어 넓고 깊은 바다와 같습니다. 불교는 부처님 단신으로 시작된 약 2,500년(인도는 1,700년)의 역사를 가진 큰 '호수'와 같고, 선지자 무하마드로부터 시작된 이슬람교는 1,500년의 역사를 가진 '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초기 힌두교와 불교의 대립에서 불교가 이슬람교로 대체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불교는 인간인 부처님이 신으로 득도한다는 인간승리의 종교라면 힌두교는 종교인지 관습인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입니다. 창시자나 교주가 없다는 것도 그렇고, 불경이나 코란 같은 지침서도 없습니다. 가장 높은 서열에 창조의 신, 파괴의 신, 유지의 신 3명 외에 다양한 신들이 있습니다. 8세기경에는 부처님도 힌두교의 신으로 환생했다고 합니다. 초기 힌두교는 소를 잡아 제를 올리는 참혹한 행사가 있었으나, 불교의 불생상 원리를 받으러 살생을 금지한다는 교리를 받아들여서 지금은 소를 죽이지도 먹지도 않고 신으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좋은 것은 다 가져다가 힌두교에 흡수시킵니다. 인도에서 힌두교는 그야말로 생활의 일부이고, 좋은 일을 하면 다시 환생하고 다시 죽고를 반복하는 삶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에 비하여 이슬람교는 알라에 대한 절대복종과 강력한 계율을 가진 한마디로 정말 빡센 종교인 것 같습니다.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드려야 하고, 해마다 한 달의 단식(라마단), 메카순례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슬람의 뜻은 순종의 뜻으로 알라신에게 복종을 통하여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라고 합니다. 과거 유럽을 정복했던 역사적 사실과 현재 다양한 국제정세 속에서 상당한 부분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척박한 사막에서 유목의 생활에서 발생한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일신으로 알라 이외의 신을 믿지 말라는 교리로 불교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를 살해하는 원죄를 이해하기는 아직 부족한 저의 지식으로 이해가 어렵습니다.
또한 세 종교간 창조주나 교주와 신도들의 관계도 범상치 않습니다. 힌두교나 이슬람교는 신과 신도들을 연결해주는 기독교의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없습니다. 이슬람교는 '이맘'이라고 해서 그날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중에서 덕망있는 사람이 주도자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모스크(사원)관리를 위하여 상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힌두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간에 연결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종교가 유지되기 위해서 이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생활규범으로 자리를 잡고 관습으로 남아 DNA에 깊게 새겨진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하여 불교는 부처님과 매개자인 스님들, 그리고 일반 신도들의 관계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스님이 되려면 일단 출가를 해서 집을 떠나야 합니다. 힌두나 이슬람교는 집에 있는 재가주의로 따로 모스크에 입교를 한다거나 특정 학교를 가는 의례나 절차는 없습니다. 태국이나 미얀마 같은 경우에는 남자면 국방의 의무처럼 스님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농업국가인 인도에서 일을 하지 않고 절에 가서 스님이 되는 공부를 한다는 것이 조금 생업차원에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생활속의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종교가 관혼상제의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소승불교는 개인적인 수행만 강조하다 보니 생활양식과 연결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결혼식, 화장문화 등 힌두교는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고, 이슬람교도 메카 등 많은 부분을 의식화하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불교는 우리나라의 천도제 등 일부 제례만 있고 일상 생활과 접목은 없는 편입니다. 결속력 차원에서 강한 규율이나 양식이 없는 것은 충성심과 바로 직결되고, 관습으로 존재하는 않은 양식을 바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의 불교가 단점이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보다는 일반 국민들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해주는 더 좋은 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불교가 선택받지 못하였다고 봅니다.
세 번째로 정치세력의 관점에서 본 불교의 쇠퇴론도 흥미롭습니다. 불교의 역사를 보면 정치세력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장 큰 헌신은 아소카 대왕이었고,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많은 인도의 왕조들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정치이념으로 활용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불교가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통치자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인도 카스트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습니다. 불교는 사람은 생로병사의 윤회속에 있고 누구나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어 윤회를 탈출한다는 평등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계급이 있어 통제가 쉽고, 반란의 위험도 적다고 볼 수 있어 힌두교를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불교가 사라진 인도에서는 지금도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이 치열합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원래 한나라였으나, 종교로 두 나라로 분리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힌두이즘이라고 이를 민족정신과 결부시켜 든든한 정치세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아소카 왕 이후 든든한 후원자를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세력들이 불교를 배척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결국 정치시스템으로 연결은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 불교는 사라졌지만, 이웃국가인 티벳, 태국과 미얀마는 활발하게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티벳은 밀교(경전을 다라니라고 부르고 입으로 암송하면서 수행)로 발전을 했고, 태국은 왕족불교로 미얀마는 엄격한 계율을 지키기로 유명합니다.
(다람살라 큐토 사원 - 대표적인 티벳 사원, 필자 직접 촬영)
종교란 무엇일까요? 인도에서 종교가 없다고 하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종교가 선택의 자유인 반면, 인도에서는 개인이 준수해야 하는 일종의 규범입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따르는 법(다르마)이 없다고 하며 천민이나 짐승으로 여깁니다. 대신 종교에 대해서는 자유롭지만, 강요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하여 물어보았지만 관심이 없었습니다. 실제 종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같은 힌두교를 믿는다고 해도 서로 믿는 신이 다르기 때문에 논쟁도 없습니다. 각자 자신이 믿는 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개인이나 조직의 발전과 성장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습니다. 원나라가 유목을 버리고 정착했을 때 망국의 길을 걸었고, 인도 불교도 그들만의 방에 가두고 민중들과 멀어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지 말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불교만의 독창성을 버리고 힌두교를 모방하면서 자기다움이 사라지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좋은 것을 받아들여 독창성을 키우면서도 자기만의 차별성을 유지하는 균형이 필요함을 배웠습니다.
2022. 8. 8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