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
한국의 청명한 5월이 그리운 달입니다. 신록이 우거지고 파란 하늘과 신선한 날씨가 그립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감옥살이의 고통을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한국의 여름철 더위에 감옥살이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인도의 5월은 폭염으로 정신이 없다면, 한국의 5월은 가정의 달 행사로 분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어느 곳 하나 빠질 게 없는 중요한 행사의 연속입니다. 인도의 5월은 어떨까요?
[어린이날 (5월 5일 vs 11월 14일)]
5월이 시작되면 아이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에 방문한 놀이공원 이야기가 나오고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이 나오고, 00 랜드 등등 귓가에 조곤조곤 들립니다. 어린이들은 꿈과 선물을 받고 자란다고 하지만, 어른들은 영 편치가 않습니다. 어린이날 중 가장 최악의 경험은 놀이공원 가는 길에 차가 막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장 혼잡시간에 입장하여 땡볕에 줄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인기가 좋은 탈것은 거의 3시간을 넘어서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이날 하루만큼은 어른은 낄 자리가 없는 어린이들의 천국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날은 1923년 방정환을 비롯한 '색동회' 회원들이 어린이의 인권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제정하였습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인도 어린이날은 11월 14일입니다.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가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교육과 복지를 중시한 곳에서 연유하였고, 1954년에 그의 생일을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가정별 친구별로 선물을 사주고 놀이공원이나 여행을 많이 갑니다. 인도 현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놀이공원을 가고 선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학교와 지역사회 중심으로 기념행사가 열리고, 네루 총리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행사를 많이 개최한다고 합니다.
여러 해의 어린이날을 지나오면서 궁금한 것은 도대체 몇 살까지 어린이로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청소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녀들과 논쟁 끝에 중학생까지는 인정해 주는 쪽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현행 법률에 근거하면 인도의 경우 아동을 만 18세 미만으로 정의하지만, 아동 노동법에서는 만 14세 이하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동복지법은 만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인정합니다. 민법에서는 18세 미만, 근로기준법에서는 만 15세 미만의 고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달은 다르지만 두 나라 모두 미래의 새싹인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날 (5.8월/5월 둘째 주 일요일)]
어린이날의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바로 어버이날이 찾아옵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키워주신 어버이날입니다. 두 분이 다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저는 어버이날의 소중한 의미는 잘 알지만 막상 기도 외에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살아계실 때에 효도하라는 만금의 진리를 이제야 알고 또 산소도 찾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버이날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어머니의 날은 기독교 사순절의 첫날부터 넷째 주 일요일에 어머니의 영혼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영국·그리스의 풍습과 1907년경 미국의 안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본인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날이 공식적으로 제정된 데는 자비스의 사망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비스가 죽고 나서 자비스의 딸 애나는 1905년 5월 9일 타인의 상처를 보듬으려 노력했던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교회에서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임이 각지로 퍼져나가자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전사한 아들을 둔 어머니들의 노고를 기리는 날을 정하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머니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956년 한국전쟁 이후 많은 전쟁미망인, 고아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머니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정부의 계획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73년에 아버지를 포함한 어버이날로 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인도는 특별한 역사적 배경은 없으나, 어머니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미국의 문화를 가져와서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도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에 가족끼리 모여서 선물을 드리고 꽃을 달아드린다고 합니다. 나라는 달라도 어머니의 은혜는 똑같이 위대하고 거룩한 것 같습니다.
[스승의 날[5월 15일/9월 5일]
어린이날, 어버이날 두 번의 행사가 끝나기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스승의 날입니다. 제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선물 선정으로 고민이 많았던 때였습니다. 얼마를 해야 하나, 무엇을 사야 하나 등등.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면 스승의 날이 이렇게 변할 줄 정말 몰랐습니다. 김영란 법으로 선물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일부 학생들의 도를 넘은 행위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학생들의 인권과 권리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의 인권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스승의 날은 1963년에 처음 시작되었으며, 세종대왕의 교육과 학문에 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종대왕이 탄생하신 5월 15일로 정하였고, 1965년부터 5월 15일로 고정되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편지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도의 스승의 날은 9월 5일입니다. 이 날은 인도의 두 번째 대통령이자 철학자였던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Sarvepalli Radhakrishnan)의 생일을 기념하여 지정되었습니다. 라다크리슈난 대통령은 교육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그의 생일을 스승의 날로 기념하여 교육자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나라 모두 법정 공휴일은 아니지만 스승님들의 고마움과 은혜에 존경과 감사를 드리는 것은 같은 것 같습니다. 인도는 한국보다 조금 공공행사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연설, 에세이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하늘 같은 스승의 은혜, 스승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속히 스승님들의 노고와 은혜를 알고 이를 진심으로 기념하고 감사하는 날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부부의 날 : 5월 21일/ 10월]
힘겹게 스승의 날도 끝나게 되면 부부의 날이 다가오게 됩니다.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부부간의 화합과 사랑을 되새기는 날이라고 합니다. 부부의 날은 1995년 5월 21일 세계 최초로 경남 창원에서 권재도 목사 부부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2003년 민간단체인 '부부의 날 위원회'가 제출한 '부부의 날 국가 기념일 제정을 위한 청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결의되면서 2007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권재도 목사님은 28년간 지자체와 공동으로 부부의 날 행사를 개최하셨고 지금도 부부의 날이 널리 발전할 수 있도록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도에는 우리나라의 부부의 날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날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힌두교의 카으바 차우트(Karva Chauth)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인도에서 주로 기념이 되는 전통적인 힌두교 축제로, 아내가 남편의 장수와 번영을 기원하며 단식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시기는 주로 보통 10월 또는 11월에 아내가 남편의 장수, 건강,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하루 종일 금식하는 날입니다. 일출부터 달이 뜰 때까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철저히 금식한다고 합니다. 문헌상으로는 이 금식은 아내가 남편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하는 헌신적인 행위로 여겨집니다. 실제 카르바 차우트 행사를 직접 체험한 적은 없습니다만, 사랑하고 기원하는데 금식까지 하면서 하는 것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무지한 관점으로 오랜 전통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럴 권한과 지식도 없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역사와 배경을 가진 행사이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현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어머니 세대들은 철저히 지켜야 하는 중요한 행사였고, 많은 어머니들이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 , 남편들도 같이 금식하면서 행사를 즐긴다고 합니다. 젊은 세대도 기존의 방식은 싫어하지만, 힌두교에서 주는 특별한 날의 행사로 기억한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5월은 어머니의 날을 제외하면 폭염과 싸우며 살아가는 힘겨운 달입니다. 한국의 5월은 힘든 부분도 있지만 사람들의 정을 느끼고 감사함을 전달하고 받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정(情)이 그립습니다. 가정의 중요성은 인도나 우리나라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날짜는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존중해 주고 감사하는 문화는 동일한 것 같습니다. 인도가 우리나라보다 물질적으로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우리나라는 물질적인 기준으로 여러 행사의 취지가 약해지고 선물을 금지하는 법까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발전을 위한 약간의 퇴보나 정체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물을 준비하기 위하여 많이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정성스러운 선물을 이용해서 과욕을 부리는 사람들을 봤던 적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폭염과 싸우는 인도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람들의 정인 것 같습니다.
저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지금의 나로 있게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들,
부부의 연을 맺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아내,
나와 아내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에 태어난 두 개의 보물,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5월에 감사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끝.
2024년 5월에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