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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살이-서른여섯달 차(24.8월)

인도살이 3년차

by 소전 India

[변화와 성찰의 36개월]


우리나라 하늘은 참 맑고 곱습니다. 깊은 비취색과 하얀 구름이 조화를 이뤄 아무리 봐도 지겹지가 않습니다. 운이 좋게 8월말에 한국에 출장이 있어 인도살이 36개월 소감을 아름다운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텁텁한 하늘에서 불안감이 생기고, 한국의 맑은 하늘에서 간만의 편안함을 느낍니다. 오늘 돌아갈 생각에 답답하지만, 부족해야 새로 채워지고 나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3년이란 짧지 않은 인도살이는 나에게 큰 변화와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나의 인도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으며, 이러한 변화는 선입견을 넘어선 이해와 공감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인도에서의 시간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img.jpg 인도의 사회와 문화(출처:www.diplomat.com)

[1. 문화와 사회]


[다양성]

인도의 문화와 사회를 나타내는 대표 단어가 바로 다양성(diversity)입니다. 인도를 소개하는 책자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다양성 속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우리 문명의 아름다움이자 시험입니다. (Our ability to reach unity in diversity will be the beauty and the test of our civilization.")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종교, 언어, 인종, 음식, 관습 등 종류가 다르고, 각 객체별로 인정하고 배제하지 않습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소달구지부터 자전거, 오토바이, 삼륜차, 승용차, 전기자동차 등 기술격차로 보면 100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과 시간의 다양성 못지않게 여러 분야에서 넓게 포용하고 상호 이해를 통한 더 큰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 인도살이가 시간을 지나면서 저도 이러한 다른 모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상하고 화려한 의상도 거북함이 없는 것을 보면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윤회설]

인도에 와서 가장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바로 생명의 영원함과 윤회설이었습니다. 저는 윤회설이 불교에서 나오는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 종교를 떠나 인도 사람들의 철학의 한 축으로 오래 전부터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면서 할 일도 많고,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도 많이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한이 많아 귀신도 많고 한번 태어나서 죽는 직선적인 인생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현세에 대한 삶의 방식과 내세를 준비하는 자세로 여러 가지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것도 현세를 떠나 내세로 가는 과정으로 축복의 장면이었습니다. 인도가 느림의 미학, 기다림의 여유도 이러한 윤회설을 기반으로 하는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카스트와 차별]

다양성과 대비, 카스트제도가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양성과 카스트 제도는 너무 상반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관점이 인도의 역사와 관습을 현재의 관점에서만 좁게 바라본 것 같습니다. 실제 3년을 살면서 카스트로 인한 문제는 많이 접해 보지 못했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에서 살고, 교민들과 주로 생활하여 인도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간 경험이 없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름을 보면 신분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면서 신분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남녀 차별입니다. 여자가 결혼 지참금을 준비해야 하고, 여자를 무시하고 경제적 참여를 제한합니다. 남자들이 누군가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고, 세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양성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자는 수행에 방해 존재로 여겨 무시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차별적인 관습은 남아있지만, 최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젊은 층들의 인식전환으로 서서히 좋아진다고 합니다

img.jpg 인디아 게이트 스모그 현황(출처 : BBC.COM)

[2. 생활환경]

[스모그]

인도살이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겨울나기입니다. 뿌연 안개와 매캐한 냄새로 덥힌 겨울을 11월부터 1월까지 2~3개월을 보내는 것이 가장 힘겹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정체되면 AQI지수가 1,000을 넘어 허걱허걱 힘겹게 살아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왜 수도를 이렇게 험지에다 정했을까? 하는 답답함에 찾아보았습니다. 1911년, 영국 식민 정부는 인도의 수도를 콜카타(당시 캘커타)에서 델리로 이전했는데, 이는 델리가 인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더 나은 행정 통제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델리는 당시 인도의 여러 왕국과 제국의 수도였던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상징적인 의미도 컸습니다. 이면에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기에 이를 말살하기 위해서 이전을 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델리의 스모그가 수도 이전부터 발생한 것은 아니고 산업화로 공장이 들어서면서 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경유 차량 운행 제한, 공장 가동 감소, 펀잡 지방의 밭 태우기를 줄인다고는 하지만, 2천만명 이상이 살고, 분지형 지형으로 쾌적한 겨울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더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인도의 무더위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인도의 여름은 3월이 시작되면서 30도, 4월에 40도, 5월에 50도의 고온을 유지합니다. 6월과 7월에 우기(몬순)이 시작되면서 고온다습해지면서 끈적끈적 더위로 이어집니다. 에어컨 보급이 많아지고 시멘트 건물과 도로가 많아지면서 정말 뜨겁게 달궈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훅 불어오는 한증막 같은 뜨거운 바람을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3월부터 9월까지 한해의 절반 이상을 에어컨을 틀고 살아야 합니다. 3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것이라 자평하지만 여름을 맞을수록 더 더워지고 적응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무더위에 이어 나타나는 폭우, 폭우로 인한 도로 침수 등도 인도살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인도 사람들의 더위 극복은 그냥 단순합니다, 바로 버티기입니다. 무더위가 끝나고 우기가 오는 마음으로 버티고, 우기가 되면 선선한 가을이 온다는 버팀으로 산다고 합니다. 저는 언제쯤 인도 더위와 친해질 수 있을까요?


인도의 생활환경은 참 척박합니다, 인도살이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주된 요인인데,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인도 사람들의 강인함과 저력이 바로 무더위와 겨울나기의 척박한 환경을 헤치고 살아온 것에서 나오지 않나 합니다.

img.jpg 인도 지역별 전통음식 현황(www.tasteatlas.com)


[3. 음식과 음주]


[고기 타령]

인도살이 먹거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이 창피하지만 고기가 먹고 싶다는 타령을 많이 합니다. 힌두교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고,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다 보니 고기를 먹는 것이 제한됩니다. 인생은 고기서 고기라는 말은 한국에서나 통하는 얘기입니다. 최근 돼지고기는 외국으로부터 수입이 늘어나서 다행입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들어올 때 고기 운반도 조금 줄어들어서 다행입니다. 인도 14억명이 고기를 먹었다면 이 세상 모든 고기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닭고기와 양고기가 있지만 아직 도축이나 유통과정이 그리 깨끗하지 않아 늘 불안합니다. 한국에 와서 음식점 간판을 보면 소고기, 돼지고기가 부위별로 팔리고 냉장고에 있는 신선한 고기를 보면서 부러움도 생깁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많고, 어느 식당에 가서 채식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정말 좋다고 봅니다.

[카레와 커리]

인도에는 커리(Curry)만 있고 카레는 없다. 라는 말처럼 사실 인도=커리 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일본 카레는 메이지 시대(19세기 후반) 동안 영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식 스튜에 기원을 두고 현지화되어 독특한 스타일의 카레로 발전했습니다. 보통 밀가루로 만든 루(roux)를 기반으로 하며, 여기에 카레 파우더와 설탕, 간장 등이 더해집니다. 일반적으로 감자, 당근, 양파, 고기(주로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주재료로 사용됩니다. 이에 비해서 인도 커리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지역별 요리법과 재료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인도 커리의 핵심은 다양한 향신료입니다. 커민, 고수, 터메릭, 가람 마살라, 생강, 마늘, 칠리 등 다양한 향신료가 사용됩니다. 향신료는 일종의 허브로 인도의 무더위와 척박한 환경에 생존하기 위한 신이 주신 선물인 것 같습니다. 많은 향신료들이 자생을 하고 생산이 많이 되어 이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저도 아직 마살라의 깊은 맛을 즐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먹는 음식의 종류가 늘어나고 즐기고 있습니다.


[음주와 드라이 데이]

한국은 언제 어디서나 술을 사고 마실수 있지만, 인도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술도 와인샵에서만 살 수 있고, 식당에서도 주류업 허가를 받은 곳만 팔 수 있습니다. 허가도 맥주, 소주, 양주, 와인 등 각 주종별로 받아야 하고, 허가에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합니다. 어떤 한국 식당은 일일 주류권을 사서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28개 주에서 약 5개주가 금주를 하고 있습니다. 드라이 데이(dry day)라고 술을 먹지 않는 마른 날도 있습니다. 주로 간디 생일(10월 2일), 공화국의 날(1.26) 등이 있는데 각 주별로 다르게 정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술에 대해서 규제가 강하다 보니, 인도의 유흥문화도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인도에 주재원으로 가게 되면 남편들의 귀가시간이 빨라지고 사모님들의 걱정거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춘이 없고, 우리나라처럼 호텔이나 모텔에 대실 문화가 없습니다.


[4.비즈니스 환경과 직장문화]


[부패공화국]

인도는 세계적으로 부패 문제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국제 투명성 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하는 부패 인식 지수(CPI)에 따르면, 인도는 2023년 기준으로 100점 만점에 40점을 기록하여, 세계 180개국 중 8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평균(약 43점)과 비슷하지만, 부패 문제가 여전히 심각함을 보여줍니다. 인도의 관료주의 시스템은 매우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며, 공무원들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결합하여 부패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요구받거나, 부패한 관료들로 인해 정당한 권리를 침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조세, 행정, 노무 등 행정절차입니다. 제가 인도에 온지 3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화한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강력하게 부패를 척결한다고 하지만, 실제 시민들의 감시나 처벌조항, 공무원들의 인식은 크게 변화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직장문화]

우리나라는 유교에 기반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어 충성도가 높은 편입니다. 인도도 마찬가지로 신분제를 갖고 있는 나라로 조직문화가 견고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가족중심으로 경영이 되고 있어 비공식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상사와 부하 직원간 권위 차이가 뚜렷하며 상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상사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며, 아랫사람의 독립적 의사결정은 제한될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 법인장님들의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들어보면 조직에 대한 충성도는 높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IT업종의 경우 봉급을 조금만 더 주면 쉽게 이직을 하고, 젊은 세대가 입사를 하면서 조직의 견고함과 충성도는 조금씩 떨어진다고 합니다. 인구가 많은 인도나 우리나라나 조직문화가 변화되는 것은 시대적 대세인것 같습니다.


[5. 인도는 있다 VS 인도는 없다]

인도살이 3년차를 맞이하면서 많은 분들이 인도 진출에 대한 전망에 대하여 물어보곤 합니다.지난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일본은 있다와 없다.” 라는 논의가 생각납니다.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본은 있다"와 "일본은 없다"라는 논쟁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 차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현재 한국 사람들이 인도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인도는 있다라는 긍정론자들은 인도의 잠재력, 문화적 풍부함, 그리고 경제적 성장 가능성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인도가 중요한 글로벌 파트너로 성장하고 있으며, 한국과의 협력에서도 큰 가능성을 지닌다고 믿습니다. 반면 인도는 없다는 부정론자들은 카스트 등 사회적 불평등, 인프라 부족, 정부의 부패와 비효율성을 들어 발전의 한계에 주목하며, 인도가 글로벌 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도전 과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도는 긍정의 관점이 요구되는 나라가 아닌가 합니다. 인도에서 살아간다는 것과 비지니스를 하는 것은 관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만, 비즈니스는 역경을 극복하여 시장을 넓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장점을 활용하고, 약점을 극복하는 전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판단의 관점에서 인도에 대한 선입관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도를 방문하지 않고 방송이나 인터넷, 그리고 여행 유투버들이 보여주는 정보나 영상들이 인도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3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인도를 알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의 언어중 "I see you"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단순히 ‘당신을 본다.’라는 뜻을 넘어 상대방의 존재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직 저는 단순히 보는 단계에 있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2년 더 인도를 이해하고 큰 틀로 이해를 하기 위하여 더 노력하겠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1)

2024년 8월 한국에서 소전(素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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