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슬기롭게 생수 마시기
얼음이 든 주스 한 모금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습니다. 인도에 온 지 한 달 만에, 저는 얼음이 든 음료를 마셨다가 말 그대로 혼비백산, 장 속이 폭풍을 만난 듯한 설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복통과 끝없이 이어지는 탈수 증상에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저처럼 주재원으로 와서 배앓이를 경험한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고, 여행 오신 분들도 빠짐없이 한 번씩은 고생합니다. 2024년에 방영된 예능 태어나서 세계일주(태세계)에서 기안 84가 바라나시에서 강물을 마셨다가 배탈이 났던 일화도 있었습니다. 출장 온 정부기관 대표단조차, ‘이제 한국 가니까 괜찮겠지’ 하고 공항 근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가 단체로 설사에 시달렸다는 웃지 못할 후일담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염된 강과 지하수, 비위생적인 거리 음식, 더운 날씨에 쉽게 번식하는 세균, 그리고 위생에 대한 인식 부족까지. 인도에서는 물 한 잔, 얼음 한 조각도 신중히 판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때로는 낯선 향신료나 찬 음료가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물갈이는 인도에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수년을 살아도 갑자기 다시 찾아오기도 합니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가 단체로 탈이 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인도에서 마시는 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지하수 또는 수돗물입니다. 하지만 마시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석회 성분도 문제지만, 수원지 자체가 오염된 경우가 많고, 오래된 배관에서는 시커먼 녹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수돗물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어, 현지인조차 직접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둘째, R/O 워터입니다. 흔히 가정에서 수돗물을 헤파 필터나 역삼투압(Reverse Osmosis) 필터로 정수해 사용하는 물입니다. 빨래나 채소 세척에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가정에서는 마시는 용도로도 씁니다. 호텔이나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물도 대부분 이 R/O 워터입니다. 저 역시 외식할 때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무료 R/O워터를 마시곤 합니다. 하지만 대표단이나 여행을 오신 분들과는 항상 미네랄워터를 주문해서 마십니다.
셋째는 미네랄워터로, 인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마시는 물입니다. 미네랄워터는 다시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인공 미네랄워터(Packaged Drinking Water)로, 일반 지하수를 여과·정수한 뒤 인공 미네랄을 첨가한 물입니다. 500ml당 약 20루피(한화로 약 300원)로 가격이 저렴해 가장 널리 소비됩니다. 다른 하나는 천연 미네랄워터입니다. 우리나라의 삼다수나 프랑스의 에비앙처럼, 수질이 좋은 자연 수원지에서 채수해 불순물 제거 및 소독 절차를 거쳐 만든 천연 미네랄 성분을 그대로 보존한 물입니다. 인공 미네랄워터보다 5배에서 10배 정도 더 비싸게 유통됩니다.
저는 용도에 따라 물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샤워나 설거지, 야채 세척에는 수돗물과 R/O 워터를 혼용합니다. 예를 들어 채소는 수돗물로 1차 세척한 뒤, 마지막 헹굼은 R/O 워터로 마무리합니다. 밥이나 음식 조리, 차(Tea)에는 인공 미네랄워터를 사용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직접 마시는 물은 천연 미네랄워터로 따로 구입해 사용합니다.
가끔 인도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 포장만 번지르르한 가짜 생수를 파는 경우도 종종 등장합니다. 또 집에서 사용하는 R/O 워터의 수질이 괜찮은지 의심이 생길 때도 많습니다. 저 역시 인도에 막 도착했을 때 부동산 중개인이 입주 선물 보따리를 건네주었는데, 그 안에는 처음 보는 조그만 측정기기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TDS 측정기였습니다. TDS는 Total Dissolved Solids, 즉 총 용존고형물의 약자로, 물속에 녹아 있는 무기물, 염분, 중금속, 유기물 등 보이지 않는 입자들의 총량을 뜻합니다.
TDS 수치는 물맛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TDS가 너무 낮으면 ‘증류수’처럼 미네랄이 거의 없는 맛없는 물이 되고, 반대로 너무 높으면 염소, 중금속, 세균 등 불순물의 함유 가능성이 높아 설사나 배탈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인도처럼 수질에 편차가 큰 나라에서는 TDS가 일종의 생존지표가 되는 셈입니다.
[TDS 수치별 물 상태]
ㅇ 0~50 ppm: 거의 순수한 물, 미네랄 부족.
ㅇ 50~150 ppm: 마시기 좋은 저 미네랄수
ㅇ 150~300 ppm: 한국 생수 대부분 이 구간.
ㅇ 300~500 ppm: 인도에서 흔한 수치. 마실 수는 있으나 맛이 텁텁할 수 있음.
ㅇ 500 ppm 이상: 마시는 물로는 부적합. 정수나 여과 필요.
제가 실제로 집 수돗물을 측정해 보니 450ppm 정도가 나왔고, R/O 정수기로 거른 물은 약 35ppm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한 번은 직원들과 ‘도대체 인도 생수는 믿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특히 집에 설치된 R/O 정수기의 수질이 괜찮은지 모두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직접 자신의 R/O 워터를 측정해 본 결과, 대부분 15~50ppm 사이로 나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수치만 좋다고 끝은 아닙니다. 필터 교체 문제로 집주인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밸브가 터져 주방이 물바다가 되는 사고도 있었기에, 인도에서 '좋은 물'을 마시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먹는 생수에 대한 TDS 측정값과 미네랄 등 주요 내용을 정리한 표입니다. (동 자료는 인터넷 검색결과 편차가 너무 커서 평균값 사용, 일부 데이터와 다를수 있습니다)
[인공 미네랄과 천연 미네랄]
직원들과 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인공 미네랄 생수'와 '천연 미네랄 생수'의 차이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천연 미네랄 생수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과연 건강에 얼마나 더 이로운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일부 주재원들 사이에서는 인공 미네랄워터에 포함된 칼슘(Ca) 섭취가 많아져 신장결석이 생겼다는 말도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이나 AI 검색으로는 시원한 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인도에서 ‘단샘’이라는 브랜드로 인공 미네랄 생수를 생산·판매하고 계신 오대성 대표님께 직접 여쭤보았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봅니다.
Q1. 생수에 들어가는 미네랄의 종류는 어떤 것들인가요?
답변) 대표적인 미네랄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ㅇ 칼슘(Ca): 뼈 건강, 근육 기능 유지
ㅇ 마그네슘(Mg): 심장 기능, 신경계 안정
ㅇ 칼륨(K): 체액 균형, 근육 수축 조절
ㅇ 나트륨(Na): 체액 유지, 신경 전달
인도의 경우, 우리나라 식약처에 해당하는 FSSAI(Food Safety and Standards Authority of India)에서 생수의 미네랄 함량 기준을 정하고 관리합니다. FSSAI 기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Q2. 인공 미네랄과 천연 미네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답변)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공 미네랄과 천연 미네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천연 미네랄은 암석, 모래층 등의 자연 필터링을 거치며 다양한 미량 원소들과 함께 복합적으로 존재해 생체 이용률(bio-availability)이 다소 높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인공 미네랄은 정제된 화학물질을 혼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미네랄의 종류나 비율에 따라 불균형이 생기거나 과잉 섭취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Q3. 생수 제조 시 인공 미네랄 첨가가 반드시 필요한가요?
답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필요로 하는 미네랄은 대부분 음식으로 섭취가 가능하며, 모든 생수에 인공 미네랄을 넣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부 기업은 물맛 조절, 혹은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인공 미네랄을 첨가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하수에는 원래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염소 소독만 하고 미네랄은 그대로 보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Q4. 인공 미네랄의 제조공정과 단가는 어떻게 되나요?
(답변) 인공 미네랄의 단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생수 제조 원가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인공 미네랄은 **칼슘염(CaCl₂, CaCO₃)**으로, 주로 석회석(CaCO₃)에 염산(HCl)을 반응시켜 만들어냅니다. 비교적 간단한 화학공정으로 제조가 가능합니다.
Q5. 인공 미네랄 생수를 마시면 신장결석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답변) 가능성은 있으나, 매우 낮다고 판단됩니다. 신장결석은 주로 칼슘의 과잉 섭취와 관련이 있지만, 칼슘은 생수 외에도 다양한 음식에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생수 하나만으로 원인을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체질이나 병리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개인에게는 결석이 생기기 쉬운 요인이 따로 있을 수 있습니다. 해외 생활 중에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물과 음식이 아닌 환경에 노출되면서 생기는 변화도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Q6. 인도에서 안전하게 생수를 마시는 팁을 알려주십시오.
(답변) 많은 팁들이 있지만 다음 세 가지를 권장합니다.
우선, 길거리 생수나 음료 주의하기입니다 인도에서는 유사 생수가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으므로, 브랜드 및 병 상태를 확인하고 구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두 번째로 , 얼음과 찬 음료 피하기입니다. 특히 얼음은 냉장고, 얼음틀의 위생상태에 따라 세균 번식 위험이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 차가운 음료는 장 트러블(배탈)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물병이나 컵 등 용기의 위생상태를 청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도는 고온다습하여 세균 번식이 빠르므로, 물을 담는 용기는 매일 깨끗이 씻고 말려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 바쁘신 가운데에도 정성껏 답변해 주신 오대성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단샘’ 생수는 일반 인공 미네랄 생수와는 달리, 자화(磁化) 기능을 통해 육각형 물 분자 구조(hexagonal water)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대성 대표님의 안전하고 슬기로운 물 마시기처럼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인도에서 45개월을 사는 저에게조차 종종 원인 모를 복통이나 식당 회식 후 갑작스러운 설사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인도는 기온이 높고, 위생 환경이 지역에 따라 매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여행자 설사(traveler’s diarrhea)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45개월을 살고 있는 저도 가끔 원인불명의 배앓이를 하거나 식당에서 회식후 설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 설사나 구토로 탈수 증상이 생기기 쉬우므로 전해질이 포함된 물(ORS, Oral Rehydration Salts)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포카리***, 코코넛 워터, 인도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ORS 파우더를 생수에 타서 마시면 효과적입니다. 없을 경우에는 없을 경우에는 소금 적당량과 설탕 한 스푼을 생수 1리터에 타서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 다음에는 충분한 휴식과 수분 보충이 필요합니다. 실제 제 경우에는 설사가 멈추기 까지 호텔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동의 불편함도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어 움직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여행중이라면 휴식이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가급적 일정을 최소화하여 쉬면서 몸을 추스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보통 인도에서 설사 증상에는 일명 ‘노란약’을 추천합니다. 바로 Norfloxacin 400mg + Tinidazole 600mg 복합 항생제입니다. 이 약은 급성 위장염, 세균성 장염 등에 흔히 사용되며, 인도 내 약국(Pharmacy, Chemist)에서 ‘NorTZ’, ‘Zanocin-TZ’, ‘Normet’, ‘RCifax-TZ’ 등의 상표명으로 판매됩니다. 주성분인 Norfloxacin는 광범위 항생제로 장내 세균 감염에 효과가 있고, Tinidazole는 아메바, 지알디아 등 혐기성균 감염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성분이 세균성과 원충성 감염을 동시에 커버해주기 때문에, 다양한 원인의 설사에 대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약국에서 처방없이 구입가능하지만 항생제이므로 남용에 주의해야 합니다. 인도 약들의 복용량이 한국보다 많아서 반 정도만 드시고 상태가 호전되면 복용 중단을 권해드립니다.
인도 배앓이의 경우 극심한 통증과 탈수증세가 동반되기 때문에 음식이나 복용후 효과가 미미하다면 바로 병원을 추천드립니다. 가정이나 여행중 유산균제를 복용하고 비상약을 준비하여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인도정부의 물관리 대책을 찾아보다 2014년에 EBS방송국에서 물의 역습 인도 이야기라는 다큐를 보게되었습니다. 11년전에 지적한 문제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인구가 늘어나면서 물의 소비가 많아지고, 물의 오염, 하수도 방치 등 치수가 전혀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암울하기만 합니다. 힘들지만 살아가야하고 살아져야하는 인도살이가 아닌가 합니다. 안전하고 슬기로운 물 마시기로 모든 분들의 건강한 인도살이를 기원합니다. 끝.
2025년 5월에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