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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살이-마흔일곱달차(25.7월)

순례의 길 - 카와르 야트라(Kanwar Yatra)

by 소전 India

인도의 7월도 한국의 7월만큼 무덥고 습합니다. 5월에 건조한 뜨거움이 지속되다가 7월이 되어 우기로 접어들면서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리면 시원하고 깨끗한 대기가 있지만, 인도의 장마철은 여기저기 배수구가 막혀 도로가 잠기고 시내가 흙탕물 범벅에 차가 엉키면서 아수라장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런 무질서의 극치 속에 델리를 비롯한 북인도 길거리에는 주황색 옷을 입고 어깨에 물통을 지고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도살이 초기에는 '왜 저렇게 다들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지?' 싶었습니다.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던 오렌지색 행렬은 어느새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바 신 찬가와 요란한 트럭 행렬은 퇴근길의 적막마저 깨뜨립니다. 한 번은 제 차가 들썩일 정도로 큰 음악 소리에 깜짝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길가의 풍경은 바로 카와르 야트라(Kanwar Yatra), 혹은 볼레(Bhole)라고 불리는 힌두교 순례행사입니다.


[순례의 길- 칸와르 야트라]

매년 힌두교의 신성한 달인 샤르반(Shravan-시바신의 달)이 되면 수많은 순례자들이 갠지스 강물을 긷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걷는 믿음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들을 카와리아(Kawariya)라고 부르는데, 주로 오렌지색 옷을 입고 어깨에 '카와르'라는 특별한 막대를 메고 그 양쪽에 갠지스 강물이 담긴 항아리를 매단 채 걷습니다.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걷기가 아닙니다. 7월 말에서 8월 초, 인도의 꿉꿉하고 뜨거운 우기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200킬로미터 이상을 맨발로 걷는 이들은 기본이고, 심지어 몸을 굴려 이동하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그들은 걷는 동안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오직 시바 신을 향한 기도에 집중합니다. 길가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임시 휴게소와 음식 제공처가 마련되어 있어, 지역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시바 신에 대한 헌신과 믿음의 가장 뜨거운 표현이라고 합니다.

칸와르-야트라-사진-.png 칸와르 야트라 참가자 모습(출처 : gnttv.com)

이들이 그토록 힘든 여정을 감수하며 갠지스 강물을 긷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힌두교에서 갠지스 강물은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모든 죄를 정화하고 영적인 해탈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카와리아들은 갠지스 강의 발원지 중 하나이자 가장 신성한 순례지인 하르드와르(Haridwar), 고무크(Gaumukh), 강고트리(Gangotri)(우타라칸드 주), 그리고 비하르 주의 술탄간지(Sultanganj) 등에서 직접 물을 길어 올립니다. 이렇게 모아진 성수는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고 고된 여정을 거쳐 각자의 고향에 있는 시바(Shiva) 신에게 바쳐집니다. 특히 물을 봉헌하는 주요 사원으로는 바그파트(Baghpat)의 푸라 마하데브(Pura Mahadeva), 미루트(Meerut)의 아우가르나트(Augharnath), 바라나시(Varanasi)의 카시 비슈와나트(Kashi Vishwanath), 그리고 데오가르(Deoghar)의 바이디아나트 사원(Baidyanath Temple) 등이 있습니다.


칸와르 야트라 여정길 (출처 : timeofindia.com)

순례 경로는 인기도와 난이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뉩니다. 가장 인기 있는 하르드와르 경로는 종종 리시케시(Rishikesh)의 닐칸트 마하데브 사원(Neelkanth Mahadev Temple)이나 푸라 마하데브 사원으로 이어지며, 약 105km에 달하는 술탄간지에서 데오가르까지의 경로는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여정으로 꼽힙니다. 이 길고 험난한 여정은 오직 신에 대한 깊은 헌신과 믿음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진정한 순례의 길인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델리에서 참가하는 사람들은 하리드와르 까지 간다고 합니다.


[카와르 야트라의 기원: 신화 속 시바 신의 희생]


카와르 야트라의 가장 깊고 널리 알려진 신화적 기원은 바로 사무드라 만탄(Samudra Manthan), 즉 '대양의 휘젓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조 신화는 힌두교의 근본 경전인 『바가바타 푸라나』, 『비슈누 푸라나』, 『마하바라타』 등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신들과 악마들이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불멸의 넥타르-암리타(Amrita)를 얻기 위해 거대한 우유 바다를 휘젓던 중, 넥타르가 나오기 전에 먼저 할라할라(Halahala)라는 치명적인 독이 바다 깊은 곳에서 솟아났다고 합니다. 이 독은 너무나 강력해서 전 우주를 파괴할 위협이 있어서 모두 절망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때 시바(Shiva)신이 엄청난 연민과 희생정신으로 창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 치명적인 독을 삼켰습니다. 독은 그의 목에 머물렀고, 그로 인해 그의 목은 푸르게 변했으며, 이때부터 시바 신은 '닐칸트(Neelkanth)', 즉 '푸른 목'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바신 형상을 모시는 행렬(출처 : news18.com)

시바 신이 독으로 인해 겪는 극심한 고통과 작열감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신들과 현자들은 서둘러 갠지스강의 성스러운 물을 그의 머리와 시바 링감(Shiva Lingam, 시바 신을 상징하는 형태)에 부었습니다. 이러한 신화적 배경 속에서 성수를 바치는 행위는 이후 시바 신의 이타적인 우주적 희생에 대한 깊은 감사와 헌신, 그리고 그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의례적 전통으로 발전했습니다. 카와르 야트라는 바로 이 신화적 사건을 기리고, 시바 신에 대한 경배와 헌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현대의 의식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수천만 명의 순례자들이 만드는 장엄한 물결]

카와르 야트라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규모의 종교 현상입니다. 최근 몇 년간 매년 2천만에서 3천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순례자가 참여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입니다. 초기에는 소규모 행사였지만, 2017년 이후 힌두이즘의 부흥과 정치적 지원이 맞물리면서 참여 인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제는 인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순례 행사로 자리매김했죠. 특히 2022년에는 하르드와르(Haridwar)에서만 무려 4천만 명의 인파가 모여 그 뜨거운 열기를 증명했습니다.

kanwar-yatra-blog-img-1024x538-blog_yatradham.org.jpg 카와르 야트라의 행렬 (출처:moneycontrol.com)

이 순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델리, 우타르프라데시, 하리아나, 라자스탄, 펀자브, 비하르, 자르칸드, 차티스가르, 오디샤, 마디아프라데시 등 인도 전역의 광범위한 주에서 모여듭니다. 전통적으로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들, 특히 빈곤층이나 노동 계층, 실업자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야트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성 순례자들의 수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참여 동기는 매우 다양합니다. 가장 큰 동기는 물론 신에 대한 깊은 헌신이지만, 여기에는 문화 홍보 및 보존, 가족의 안녕 기원, 공동체 단결 증진, 심지어 특정 힌두트바(Hindutva) 정치에 대한 지지 표현까지 포함됩니다. 이렇듯 카와르 야트라는 단순히 종교적 의례를 넘어, 일부에게는 사회-종교-경제적 동원의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걷는 것이 가장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이동 방식이지만, 일부 순례자들은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지프 또는 미니 트럭을 사용하여 이동하기도 합니다. 이 고된 여정 내내 순례자들은 끊임없이 볼 밤(Bol Bam)!"을 외치고, 시바 신을 찬양하는 종교적 바잔(bhajans, 헌신적인 노래)을 부르며 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델리시내가-칸와르 야트라.jpg 퇴근길에서 본 카와르야트라 풍경(필자 직접 촬영)


[빛과 그림자, 피할 수 없는 문제점들]

카와르 야트라의 장엄함 뒤에는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존재합니다. 수천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교통 체증, 소음 공해, 그리고 환경오염은 이 행사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키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대거 이동하는 시기가 되면, 도로는 마비 상태가 됩니다. 지난 7월 24일, 저 역시 델리에서 집으로 가는 데 평소의 두 배가 넘는 두 시간이 걸릴 정도로 심각한 교통 체증을 겪었습니다. 델리와 우타르프라데시를 잇는 주요 간선 도로는 아예 폐쇄되거나 크게 우회되는 경우가 많아,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불편은 극에 달합니다. 평범한 하루의 통근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 됩니다. 카와르 야트라 행렬에 동반되는 대형 트럭들은 순례자들을 위한 이동 수단이자 거대한 스피커와 DJ 장치를 실은 '움직이는 클럽'이 되기도 합니다. 이 트럭들에서 밤낮없이 쏟아져 나오는 리믹스된 종교 음악과 인기 영화 음악은 엄청난 소음 공해를 유발하며, 주변 지역 주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방해합니다.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한꺼번에 모여 이동하면서 지역 자원은 막대한 부담을 안게 됩니다. 특히 순례 경로와 강변을 따라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는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야기합니다. 빈 생수병, 음식물 쓰레기, 심지어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분뇨 쓰레기까지 뒤섞여 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어떤 곳은 쌓인 오물 때문에 통행 자체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정부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아직 멀기만 합니다.


넘쳐나는 쓰레기-.png 카와르 야트라 행사후 치워지는 쓰레기들(출처 : asianetnews.com)


[성수와 정한수]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 갠지스 강물을 길어 나르는 인도인들의 순례 행렬을 보면서 도대체 성수가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더럽기만 해 보이는 강물이 성수로 불리며 숭배되는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힌두교 내에서 이 성수(聖水)는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수성, 신성함, 그리고 엄청난 정화력을 지닌 존재로 숭배됩니다. 신도들은 이 물이 영혼을 정화하고 평화, 번영, 그리고 신성한 보호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에게 단순한 지리적인 강을 넘어, 살아있는 여신이자 생명을 양육하는 어머니로 인식됩니다. 존재의 지속적이고 생명을 주는 흐름을 구현하는 영적 및 육체적 정화의 근원이자 모든 죄를 씻어내는 힘을 가진 존재로 숭배받는 것입니다.

성수를 담는 장면-livemint.com).jpg 강가에서 성수를 담는 모습(출처 : moneycontrol.com)

성수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새벽녘마다 정한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정한수'라 불리는 이 물은 새벽에 그 누구보다 먼저 길어 올린 맑은 우물물을 의미합니다. 이 물은 세상의 어떤 불순물도 닿기 전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여겨지며, 하늘의 맑은 기운을 담고 있다고 믿어졌습니다. 이러한 관행은 한국의 전통 신앙, 특히 물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정한수는 어머니들이 자식의 안녕, 가족의 건강, 집안의 평화를 빌며 간절한 소망과 진심 어린 염원을 투영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습니다. 물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간절한 염원을 담아내며, 영적인 정화와 보호를 갈구하는 인류 보편의 믿음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전통이 아닌가 합니다.


[종교의 본질]

카와르 야트라의 장대한 행렬을 보면서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갠지스 강물을 긷고 묵묵히 걷는 수많은 순례자들의 모습, 우리 귀에는 시끄러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음악을 통하여 힘을 얻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례의 길에서 아직 인도는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인도 사람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신에 의지하여 자신의 염원을 이뤄내는 험난한 과정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종종 그 본질을 잃고 종말론적 불안이나 자신이 신이라는 왜곡된 욕망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구원해야 할 신앙이 도리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버리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카와르 야트라 순례의 과정에서 혼잡과 불편함, 사회적 문제점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이 순례를 보며 저는 또 하나의 살아 있는 인도를 마주한 듯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모든 이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빌어봅니다. 끝.


2025년 7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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