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의 단상-인도에서 바라본 한국과 일본
광복절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특별한 날입니다. 이 날은 한국만의 기념일이 아니었습니다. 8월 15일, 인도도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독립기념일을 맞이합니다. 한국보다 2년 늦은 1947년의 일입니다. 두 나라가 같은 날, 같은 의미로 기념일을 가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인도의 광복절 풍경은 무척 화려합니다. 도로 곳곳에 국기가 펄럭이고, 차량마다 깃발이 꽂혀 있습니다. 아이들은 얼굴에 삼색기를 그리고, 옷도 국기 색으로 맞춰 입습니다. 길가에는 크고 작은 국기를 파는 상인들로 북적입니다. 한국의 차분한 광복절과는 달리, 인도의 광복절은 자유롭고 활기차며, 그 열정 속에서 독립의 의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습니다.
[식민 지배의 역사]
한반도의 식민지는 35년이었습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의 직접 통치 아래 혹독한 억압을 받았습니다. 징용과 수탈, 언어와 이름까지 빼앗기는 민족 말살 정책이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그 참혹한 시기는 35년 만에 끝났습니다. 짧다고 하기엔 길고 아팠지만, 인도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의 식민지는 무려 200년에 걸친 긴 역사였습니다. 처음에는 동인도회사라는 민간 기업으로 시작했습니다. 무역을 명목으로 들어왔던 그 회사는 점차 군대를 거느리고 세금을 거두더니, 마침내 영토를 지배하는 정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1857년 세포이 항쟁 이후에는 영국 왕실이 직접 통치에 나섰습니다. 인도는 그렇게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식민지배의 두 얼굴]
여기서 두 나라의 경험은 크게 달랐습니다. 영국은 ‘간접 통치’를 택했습니다. 번왕국을 인정하고 일부 자치를 허용하면서 효율적으로 인도를 다스렸습니다. 언어와 종교, 문화를 억압하긴 했지만, 완전히 말살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어 교육은 훗날 인도의 독립운동과 세계 진출에 토대가 되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한국을 철저히 지우려 했습니다. 총독부를 세워 중앙집권적 통치를 강행했고, 한국어를 금지하며 일본식 이름을 강요했습니다. 신사참배까지 의무화하며 정신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영국이 분열을 이용해 지배했다면, 일본은 존재 자체를 없애려 했던 것입니다. 독립 이후의 관계도 차이가 있습니다.
인도와 영국은 식민의 상처가 있음에도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영연방의 일원으로 경제·문화 교류도 활발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사과와 배상, 역사 왜곡 문제는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역사도 아쉽지만 과거 역사를 왜곡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이 친일의 과오를 덮고 자기들의 매국행위를 합리화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준엄한 역사의 평가는 벗어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인도에서 만난 두 나라의 기업]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인도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의 모습에서도 드러납니다. 현재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약 650개, 일본은 1,400개로 두 배 가까이 많습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일찍이 인도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인도 국민차 마루티 스즈키입니다. ‘고장이 나지 않는 차’라는 신뢰로 인도인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하지만 거리에서 보는 대부분 차는 많이 찌그러져 있음) 한국 기업들의 본격적인 진출은 1990년대 이후였습니다. 현대자동차, 삼성, LG가 중심이었고, 인도 중산층의 성장을 발판 삼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K-팝과 K-드라마 같은 한류의 인기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면서 브랜드 가치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두 나라의 진출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은 합작투자와 M&A를 통해 현지 기업과 손을 잡았습니다. 반면 한국은 단독 투자를 선호했습니다. 일본 기업은 보수적이고 신중하지만 장기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전략을 택했고, 한국 기업은 혁신과 속도로 승부했습니다.
[인도를 넘어 세계로]
요즘 인도에서 일본 기업들을 보면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인도를 생산 기지로 삼아 아프리카와 중동을 겨냥하는 전략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푸네, 첸나이 등지에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인도는 14억 인구를 가진 거대한 시장이자, 주변나라까지 합치면 20억 명이 넘는 광활한 소비시장입니다. 한국 기업에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일본의 기술을 따라잡으려 했던 것처럼, 이제 인도는 우리의 기술을 원합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어려운 형국에 놓인 지금, 인도는 우리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기다림은 3년에서 5년 안팎으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광복 80년을 맞이한 지금, 인도에서 한국과 일본을 다시 바라봅니다. 과거에는 식민과 지배로 얽혔던 두 나라가 이제는 경제와 문화의 경쟁자로 인도 땅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역사는 무겁지만, 미래는 열려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 기업들이 인도에서 뿌리내리고, 더 멀리 세계로 뻗어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2025.8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