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VS 미국 관세분쟁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인도의 혹독한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선선한 기운이 감돕니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계절이 변하듯, 국제 관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섭리를 따릅니다.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해처럼, 국가 간의 관계도 늘 우호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제가 인도에서 생활을 시작한 2021년, 미·인도 관계는 ‘인도·태평양 전략’ 중심으로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를 핵심 파트너로 격상시켰고, 쿼드(Quad)를 정상급 회의체로 끌어올리며 팬데믹 속에서도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2025년 2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모디 총리의 미국 방문은 양국 관계가 순조롭게 이어질 것 같은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인도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확대를 이유로, 미국이 인도산 제품에 최대 50%의 징벌적 관세 부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굳건해 보이던 협력 관계도 국가 이익 앞에서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관세 업무를 담당하는 제 입장에서는 이번 미·인도 간 관세 분쟁이야말로 국제 관계의 본질을 가장 명확히 엿볼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관세(Tariff)는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그 뿌리는 무역로 통행세에 있습니다. 심지어 어원도 스페인의 항구 도시 타리파(Tarifa)에서 징수되던 통행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히 세금을 걷는 수단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 재정 확보, 자국 산업 보호, 무역 협상 카드 등 복합적 기능으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관세는 목적에 따라 상계관세, 덤핑방지관세, 보복관세 등으로 나뉘며, EU와 같은 통합 무역권에서는 ‘관세동맹(Customs Union)’을 통해 공동 정책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산업구조가 취약하거나 소비재 수입이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높은 관세를 부과하여 대외통상 정책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인도는 자국에서 생산 가능한 소비재에는 높은 관세를 매겨 수입을 억제하는 반면, 원유·원자재와 같은 전략적 품목은 낮은 관세를 적용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또한 값싼 외국산 제품이 대량 유입되어 국내 산업을 위협할 경우, 세이프가드(Safeguard)나 덤핑방지관세를 발동합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시행한 ‘상호 대응 관세(Reciprocal Tariff)’는 전통적인 관세 정책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통상적 피해 조사나 산업 구조 분석이 아닌, 단순히 양국 간 무역 적자액을 기준으로 세율을 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유무역 원칙을 흔들고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립니다. 특히, 예고 없이 규정이 바뀌면 기업들은 재고 관리, 계약 이행, 투자 계획 전반에 큰 혼란을 겪게 됩니다. 현장에서 보면 ‘최고 권력자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정책’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의 상품 무역적자 규모는 약 9,180억 달러로 집계되었습니다. 주요 적자국은 다음과 같습니다.
ㅇ 중국: 2,954억 달러 (전자제품·소비재)
ㅇ EU(27개국): 2,356억 달러 (자동차·기계류)
ㅇ 멕시코: 1,718억 달러 (자동차·부품)
ㅇ 베트남: 1,235억 달러 (의류·신발·통신기기)
ㅇ 대한민국: 660억 달러 (IT 기기·자동차)
ㅇ 인도: 458억 달러 (의약품·보석·섬유)
인도는 미국의 무역적자 상대국 가운데 12위권에 해당하며, 전체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인도를 대상으로 ‘50% 징벌적 관세’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외교적 압박의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인도는 미국에 873억 달러를 수출하고 415억 달러를 수입하여, 458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인도의 대미 주요 수출 품목은 의약품(약 109억 달러), 보석·귀금속, 섬유·의류, 철강 제품 등이며, 미국으로부터는 항공기, 화학제품, 의료 장비 등을 수입합니다.
관세 인상 여파는 가장 먼저 섬유 산업을 강타했습니다. 기존 8~12%였던 대미 수출 관세율이 25%로 오른 데 이어, 추가 보복관세로 50%까지 치솟게 되면서 인도 섬유업계는 방글라데시·베트남 등 경쟁국에 밀리고 있습니다. 특히 남인도 티루푸르(Tiruppur) 지역에서는 대규모 주문 취소가 이어지고, 수십만 개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일부 업계 전망은 연간 수출액 40% 이상 감소를 경고합니다. 의약품은 아직까지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인도는 미국 제네릭(복제약)의 30% 이상을 공급하는 핵심 파트너로, 미국 내 저가 의료 체계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인도 주요 제약사의 매출 중 40~50%가 미국 시장에서 발생하는 만큼, ‘언제든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 자체가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관세가 현실화된다면 미국 내 약가 상승으로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떠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도 정부는 감정적 대응보다는 실용적·다층적 전략을 택했습니다. 미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안보 파트너로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 때문입니다. 보복관세 대신 ▲피해 산업 보조금 확대 ▲세금 감면 ▲수출업체 신용보증 강화 ▲국내 수요 기반 확충 등으로 충격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농민 희생은 없다”는 원칙 아래, 면화 가격 지원과 공공 구매를 확대하며 농업 보호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한편, 이번 관세 위협은 인도 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했습니다. “아트마니르바르 바랏(Aatma-nirbhar Bharat, 자립하는 인도)” 구호가 힘을 얻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시장 다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은 ‘Use Indian’ 캠페인을 벌이며 내수 소비를 애국적 행동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 위기 대응을 넘어, 장기적으로 자립적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금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특히, 단기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일방적인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는 미국의 행태는 국제 무역 질서의 예측 가능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분쟁은 인도가 내수 강화·시장 다변화라는 방향으로 체질을 바꾸는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일방적 압박이 미국 물가상승으로 미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부메랑 효과’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관세 전쟁의 승패는 결국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도는 ‘아트마니르바르 바랏’ 정책과 정부 지원을 토대로 방패를 두텁게 하고 있고, 미국은 소비자와 의회라는 내부 변수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에는 살아본 경험이 없는 저의 주관적 판단 하에서 버티기의 달인인 인도가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무역 전쟁은 어느 한쪽의 완승이 아닌 양측 모두의 손실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하루빨리 양국이 관세 갈등을 접고, 자유 무역과 상호 발전을 향해 다시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끝.
2025년 9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