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살이-오십달차(25.10월)

통관애로 왕국-인도

by 소전 India

[디왈리 축제와 최악의 공기질]


AQI-680, 지난 10월21일 디왈리 축제 직후에 인도 중앙오염통제위원회(CPCB)가 AQI(Air Quality Index) 수치입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디왈리가 끝나자, 뉴델리의 공기 사정은 예상대로 급격하게 악화되었습니다. 빛의 축제라고는 하지만, 쉴 새 없이 터지는 폭죽과 연등, 그리고 인근 지역의 농작물 연소(Stubble Burning), 차량 배기가스 등의 복합적 요인이 더해져 대기질이 세계 최악 수준으로 치닫습니다. CPCB 자료에 따르면, 델리 지역의 공기질 지수(AQI)는 ‘매우 심각(Severe)’ 단계로 안전 기준치를 아득히 생명을 위협하는 수치입니다. 뉴델리의 스모그는 이미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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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회자되었던 만화처럼, "달에 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방독면을 쓴 사람이 "아니오, 델리에 가는 겁니다"라고 답하는 블랙 유머가 현지인들의 현실을 대변합니다


인도에 온 지 50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델리의 겨울 스모그는 늘 어렵고 힘든 난관입니다. 그리고 이 스모그만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바로 인도의 통관 애로 문제입니다. 스모그가 우리 교민들의 생활 고충이라면 통관애로는 우리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봅니다.


[통관 애로의 구조적 난제]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보고한 통관 애로 총 151건 중, 75건(약 49.7%)이 인도에서 발생하였습니다. 국가별 최다 기록으로, 인도는 명실상부한 '통관 애로 최다 발생국'입니다. 이는 우리 기업이 인도 시장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이 일회성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저는 그동안 델리를 비롯해 첸나이, 뭄바이 등 우리나라 기업이 진출한 주요 지역을 다니며 많은 통관 애로 사례를 직접 접했습니다.


주요 애로 유형으로는 통관 지연, HS Code(품목분류)의 자의적 해석, 원산지 증명서 불인정 등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본, 중국 등 해외 기업은 물론, 심지어 인도 기업들조차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공권력의 행정 절차 앞에서 대동소이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러한 통관 애로를 해결하며 얻은 경험과 분석을 공유하여, 기업들이 사전에 대비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권위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정 시스템]

통관 애로의 원인을 자로 잰 듯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지만, 최초의 접점은 인도 세관 및 세관 공무원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도 세관 공무원의 권위적인 자세로 꼽힙니다. 인도 세관을 비롯한 대부분 행정기관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제도를 상당 부분 계승했습니다. 당시 세관은 통치 수단으로 활용됐고, 이는 세관 조직의 권위주의적 성격과 정부 통제 중심 문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현대 인도 세관에도 남아 있어, 세관 공무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과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업지원보다는 징수와 조사 성과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인도 관세청(중앙간접세위원회, CBIC) 로고

현재 인도 관세청의 정원은 약 9만 명이나, 실제 현원은 6만여 명으로 약 30%가 부족합니다. 그 결과 1인당 업무 부담이 과중하여 통관 지연이 발생합니다. 또한 잦은 인사이동으로 담당자가 자주 바뀌어 동일 사안을 반복 설명해야 하는 비효율이 초래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화물 검사 중 파손이나 장기 지연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도는 전자통관시스템인 ICE-gate를 운영하지만, 세관 관서가 약 230개(출장소, ICD 포함 시 약 2,000개)에 달하고, 통신 속도가 낮은 지역도 많아 접속 오류나 송수신 지연이 자주 발생합니다.


[법령·규정의 불투명성 및 모호성]

인적 요인 외에, 실제 행정 절차를 규정하고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법령 규정의 운영 사항 역시 큰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령이나 행정규칙을 개정하거나 제정할 때 사전 공지와 이해관계인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며, 공표일시도 미리 안내하여 시행에 어려움이 없도록 합니다. 하지만 인도는 수입 규제를 당장 시행했다가 취소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2020년에는 컬러 TV 수입을 금지하였다가 번복하면서 시장에 큰 혼란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KS마크와 같은 BIS 인증 제도 역시 일정 기간 유예 후 급작스럽게 시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 기관의 행정 절차에는 모호성이 존재하지만, 민원인이 세관에 제출하는 서류는 완벽하고 정확성을 요구합니다. 오타나 훼손된 문서는 진본이 아닌 위조 문서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인도 세관은 수입신고서(BOE, Bill of Entry)와 선적서류(B/L, Commercial Invoice 등)의 완벽한 일치를 요구합니다. 단순한 오타나 기재 불일치가 있어도 통관이 보류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또한 심사와 직접 관련이 없거나 이미 제출한 자료(CAROTAR Form-I 등) 외에 추가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품목분류(HS Code)와 과세가격을 결정하는 세관의 심사 단계에서도 자의적 해석이 자주 발생합니다. 고가 품목이나 첨단 기술 제품의 경우 기업이 제시한 가격을 인정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가격을 조정하거나, 품목 코드를 변경해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통관이 지연되면 화물 보관료와 수입 신고 지연세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일부 업체는 납기를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급행료를 주고 통관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경직된 문화와 비공식적 관행]

인적, 법적 요인 외에 경직된 문화적 관행 역시 통관 애로 해소에 큰 장벽이 됩니다. 통관 애로 발생 시 담당 세관 직원을 직접 만나기 어렵습니다. 세관 출입은 제한적이며, 예약 없이는 면담이 불가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최근 도입된 비대면 통관제도(Faceless Assessment)는 업무 효율성 제고가 취지였으나, 실제로는 관할 세관이 분산되어 오히려 절차가 복잡해진 사례도 나타납니다.


인도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주가드(Jugaad)’ 문화는 정식 절차보다 편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통관 절차의 예측 가능성을 낮추고 기업에 불확실성을 초래합니다. 또한 인맥을 통한 비공식적 해결 관행이 여전히 존재하며, 일부 기업은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잠깐”이 수분 단위의 의미지만, 인도에서는 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에 대한 인식 차이도 조율 과정에서 큰 차이를 발생시킵니다.



[인도 통관애로 대응 방안]

그동안 경험을 보면, 문제 원인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담당 세관(담당자)의 의견에 신속하게 대응했을 때 통관 애로가 신속하게 처리되었습니다. 반면, 장기 표류하거나 '미아 건'이 된 사례도 있습니다. 복잡한 사안의 경우, 우리 기업(담당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의욕이 부족했던 사례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되는 것도 없고, 되지 않는 것도 없다'는 말이 인도에 대한 선입견을 담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통관 애로 해결의 핵심적인 요소임은 분명합니다.


인도의 복잡한 통관 환경에서 우리 기업이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전략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인도 특유의 제도와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류의 완벽성 확보가 핵심입니다. 모든 서류는 오타·오기재 없이 완벽하게 일치해야 합니다. 원산지증명서와 인보이스 번호 불일치, Pusan/Busan 표기 차이, 무게(N.W) 차이 등 사소한 차이도 장기간 통관 지연의 원인이 됩니다.


통관 전 사전 검토 절차를 강화해야 합니다. 대량 수출 전에 소량 샘플을 먼저 통관해보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HS Code와 관세율, 필요 허가·승인 여부, 과세 가격 평가 요인 등을 사전에 면밀히 확인해야 합니다. 불명확할 경우 인도 세관의 품목분류 사전회시 제도(Advance ruling)를 통해 유권 해석을 요청하는 것도 유용합니다. 인도 현지 전문가의 활용이 필요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현지 포워더나 관세사를 통한 대응이 효과적이며, 이들은 세관과의 소통 채널을 이용하면 문제 해결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인도 관세당국도 나름 Easy Doing Business라는 프로젝트를 마련하여 실행하면서, 통관절차 개선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관세청도 양국 관세청장간 회의를 개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 23.12월에는 한국과 인도간 원산지증명서 전자교환시스템(EODES, Electronic Origin Data Exchange System)을 개통하여 원산지증명서 활용을 크게 개선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이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인도 EODES 개통식 행사(23.12.6, 인도 뉴델리 삼랏호텔)

인도의 통관 애로는 역사적 배경, 세관의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 불투명한 규정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이러한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철저한 서류 준비, 사전 검토, 현지 전문가 및 지원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대응한다면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인도는 거대한 기회의 땅이지만 동시에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진 시장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처럼, 인도의 제도와 문화를 존중하며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앞으로 인도살이도 스모그와 싸우는 힘겨운 날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겠지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통관애로도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되새겨봅니다.


25.10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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