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있는 사회를 기원하며
저 사람 참 얼굴이 두껍네, 염치가 없네. 종종 듣는 소리입니다. 얼굴이 얇은 사람은 사소한 잘못에도 얼굴이 붉어지고, 얼굴이 두꺼운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도 태연합니다.
옛 사람들은 이 얼굴의 두께를 ‘염치(廉恥)’로 가늠했습니다. ‘청렴할 염(廉)’, ‘부끄러울 치(恥)’ 자를 써서, 올곧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논어』 안연편에서 공자는 제자 안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면 무엇을 하겠는가(人不知恥, 其何以爲人乎).”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바로 인간됨의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염치는 단순히 체면을 지키는 감정이 아니라, 양심이 작동하는 지점입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잣대가 나를 꾸짖는 순간이 바로 염치라고 봅니다.
옛 조선 사회에서도 ‘염치’는 인격의 기둥이었습니다. 사헌부가 관리의 부정을 다스릴 때 ‘염치 없는 자’로 기록된 이는 벼슬길에서 퇴출되곤 했다고 합니다. 재물보다 명예를 중히 여기는 사람, 체면보다 양심을 택한 사람이 바로 염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염치를 넘어선 극단: 후안무치(厚顔無恥)와 파렴치(破廉恥)]
최근 뉴스를 보면 참 염치없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분명히 자기가 말과 행동을 했음에도 아니라고 부정을 합니다. 뇌물을 받았으면서도 마지못해 정에 끌려 받았다가 돌려줬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우기거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서 상상도 되지 않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감히 염치가 없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아깝지만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터울 厚’, ‘얼굴 顔’, ‘없을 無’, ‘부끄러울 恥’로, 얼굴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사기(史記)』의 진나라 이야기에서 자주 인용되는데, 어떤 신하가 황제에게 간언하다 꾸지람을 들었음에도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자, 주변에서 “참 후안무치한 자로다”라며 비웃었다고 합니다.
후안무치도 모자라 염치를 아예 깨뜨리고 짓뭉개버린 경우를 ‘파렴치(破廉恥)’라 부릅니다. 염치를 찢어버릴 파(破) 자를 쓰니, 이는 양심의 마지막 남은 조각마저 산산이 부숴버린 악행의 최상위 단계를 뜻합니다. 단순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넘어, 비도덕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자들이 바로 파렴치의 영역에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권력자의 경고: 태욕근치(殆辱近恥)]
특히 권력과 명예를 등에 업은 자들이 염치를 잃을 때의 위험성은 동서고금의 경계였습니다. ‘태욕근치(殆辱近恥)’, 즉 ‘권세와 총애를 믿고 욕된 일을 하면 곧 부끄러움이 닥쳐올 위험이 가까워진다’는 말은 공직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경고입니다. 당나라 말기 재상 이종민(李宗閔)이 권력에 취해 간언을 무시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다 결국 실각하고 유배당한 일화는, 권세의 힘을 과신하여 염치를 버린 자의 말로가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보여줍니다. 이는 곧 자기가 말과 행동을 했음에도 아니라고 부정을 하고, 뇌물을 받고도 정에 끌려 받았다고 변명하는 현대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 역시 권력자의 부끄러움 상실 사례로 인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평가와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인물을 옹호하거나,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해 대중에게 직접 해명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 그리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고위 공직자가 과거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자리를 지키는 행위 등은, 국민이 요구하는 공직자의 최소한의 염치와 도덕성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합니다. 이처럼 부끄러움을 깨뜨리는 파렴치한 행태는 권력이 언제든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수치(羞恥)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태욕근치의 경고를 상기시킵니다.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는 후안무치와 파렴치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이들의 뻔뻔함에 대해 적합한 단어를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염치는 가장 조용한 도덕]
염치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가장 조용한 도덕이라고 봅니다. 법이 막지 못하는 부정도, 제도가 잡아내지 못하는 탐욕도, 염치가 있다면 멈출 수 있습니다. ‘나는 부끄럽다’는 말은 약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눈치 보지 말라”, “자기주장을 당당히 하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그러나 그 ‘당당함’이 염치를 잃은 뻔뻔함으로 변할 때, 사회는 삭막해집니다. 염치는 인간의 얼굴을 빛나게 하고, 후안무치는 인간의 얼굴을 두껍게 만듭니다. 염치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