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by 최윤형

불만은 없으나, 발전도 없다.


질투는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동화 속 이야기에서 공주보다 마녀에게 더 큰 감정적 공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선하고 아름답기만 한 주인공보다 질투하고 분노하며 소외당하는 마녀가 더 현실 같았고, 마치 내 마음 한구석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웃음이라는 얼굴 위의 표정이 언제나 진실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행복이나 사랑 같은 상승적인 감정보다는 우울, 자괴감, 실망 같은 하강적 감정이 더 자주 내 마음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런 감정들은 외부에서 갑자기 불어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나의 일상 속, 가까운 관계들 속에서 스며들었다.


특히 '상대적'이라는 개념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그 감정들은 더욱 선명해졌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게 되는 순간, 부러움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작게 씨앗을 틔웠고, 그 씨앗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질투라는 감정으로 번져갔다. 누군가는 무엇을 쉽게 이루는 듯 보이고, 누군가는 더 빛나 보이며, 때로는 이유 없이 누군가의 행복이 나에게 상처로 다가오기도 했다. 타인의 성취는 축하의 대상이 되어야 했지만, 현실 속에서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질투는 꼭 의도적으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었고, 그것은 무력감과 수치심을 동반하며 나를 작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지 감정에 끌려만 다니지는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표현해야 할지를 배우며 성장해 왔다. 질투를 느꼈다고 해서 누군가를 해하려 하거나 관계를 파괴하려는 충동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감정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에 따라 행동하려 노력하는 존재다. 배운 대로,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우리는 비교적 ‘잘’ 반응한다. 어떤 감정을 겪더라도 겉으로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관계를 지속하려 애쓴다.


때로는 이런 감정들을 피하기 위해 관계 자체를 끊어내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모든 비교와 질투는 결국 ‘함께 있음’에서 비롯되기에, 혼자가 된다면 이런 불편함은 사라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고립 속에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감정의 상처를 동반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성장하고 배우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런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 안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더 깊이 이해하며, 조금씩 더 단단한 존재로 거듭난다.


만약 감정을 피하고,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며, 동물처럼 본능적으로만 산다면 불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도, 스스로를 자책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에는 성찰도 없고, 발전도 없을 것이다. 감정이 우리를 괴롭히는 순간은 많지만, 바로 그 감정들 덕분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자각하고 변화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이 일으키는 파동 속에서 배우려는 자세다.


질투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질투도, 자괴감도, 실망도 모두 우리의 일부이고, 그것을 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주 돌아보고, 감정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성숙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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