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는 자리

by 최윤형

놓아줄 것을 놓아줄 때.


벚꽃이 지는 자리에 어느새 푸른 나뭇잎이 무성해진다. 매년 4월이면, 사람들은 봄을 이야기하며 벚꽃을 기다린다. 하지만 벚꽃이 만개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만개했다고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꽃잎은 흩날리고, 길바닥에는 하얗고 분홍빛 가루가 내려앉는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남은 것은 푸른 잎이다. 처음엔 그 푸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내 계절은 자연스럽게 다음 옷을 입는다.


누군가 떠나간 자리에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있다. 처음엔 낯설다. 함께 나눈 말들, 웃음소리, 매일 주고받던 인사와 시선들이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휑하고 조용하다. 그 조용함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계속 붙잡고 있던 손이 텅 비었을 때의 허전함처럼, 떠난 자리에는 공백이 선명히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머물러 보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아주 작고 따뜻한 무언가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방금 전까지 누군가 앉아 있다 떠난 의자에 남은 체온처럼.


봄의 끝에서 우리는 상실을 배운다. 그저 아름답기만 할 것 같았던 계절이 사라지는 순간을 통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그 상실은 전부를 앗아가지 않는다. 벚꽃이 진 후, 나무에는 푸르른 잎이 남고, 그 푸름은 또 다른 계절의 시작이 된다. 이별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슬픔이 지나간 후에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따뜻한 기억은, 그 관계가 허상이 아니었음을, 한때 진짜였음을 증명한다.


어느 한 시절 함께 했던 사람, 감정, 시간은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람과 나눈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그 흔적은 우리 내면에 천천히 스며든다. 때로는 습관이 되고, 때로는 풍경이 되고, 어떤 날은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에 숨어 있기도 한다. 그것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로 변형되어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잃고도 계속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잃었던 것들과 다시 조우할 준비를 천천히 해 나간다.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고, 추위가 지나가면 새싹이 돋는다. 우리는 해마다 그것을 경험하면서도, 매번 처음인 듯 놀라곤 한다. 어쩌면 인간은 그만큼 회복을 믿기 어려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팠던 마음이 낫고, 떠난 사람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우리는 슬픔에 너무 깊이 잠겨 있을 때 그것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자취가 사라진 것 같아 허전한 자리에도, 언젠가는 다시 싹이 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빈자리를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떠나간 자리를 금세 채우려 하다 보면, 온전히 슬퍼할 시간도, 온전히 보내줄 여유도 갖지 못하게 된다. 떠나간 이의 자리를 잘 보내주고, 그 자리에 머물던 감정을 잘 정리한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다. 자연이 그러하듯, 마음에도 순환이 필요하다. 슬픔이 퇴장할 시간, 그리움이 잠잠해질 공간, 그리고 새로운 감정이 들어설 틈.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 어떤 관계든 끝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의 기점이 되기도 한다. 벚꽃이 졌다고 해서 나무가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듯, 어떤 이별도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일은 아니다. 그 자리에는 분명 새로운 무언가가 자란다. 시간이 지나면, 그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 또한 소중해진다.


만약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아니, 다시 무엇이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마음은 다시 나무가 된다. 다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우며, 어느 순간 꽃을 피운다. 벚꽃이 되어 흐드러지게 피는 순간이 또 온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모든 이별은 절망이 아니라, 또 다른 피어남의 준비였다는 것을.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빈자리를 보며 눈물짓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이 감정 또한 언젠가 누군가를 다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지금 당신이 마주한 이 허전함이, 결국 다시 누군가의 체온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당신을 더 깊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계절은 변한다. 마음도 그렇다. 중요한 건 그 변화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벚꽃이 모두 사라진 시간이지만, 다시 그 벚꽃이 피어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위해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이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언젠가 다시 무성한 나무가 되어 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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