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두려워

by 최윤형

변화가 있다는 건, 새로운 기회가 왔다는 것


나는 변화를 두려워했다. 변화는 단지 한 가지 감정으로 정의되지 않았다. 그것은 설렘과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동시에 낯선 곳에 발을 디뎌야 한다는 공포와 막연한 불안으로 나를 짓눌렀다. 변화는 나를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로 밀어냈고, 그 세계는 나에게 또 다른 적응을 요구했다. 적응이라는 말속에는 언제나 하나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이 숨어 있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규칙 속에서 나는 늘 나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 눈치를 읽고, 맞추고, 다듬는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치 날 것으로 내던져진 채, 뜨거운 기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날 것의 모습 그대로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 발은 피를 흘렸다. 익숙하지 않은 대지 위에서 조심스럽게 첫 발을 떼는 순간, 나는 나의 미숙함과 어설픔을 숨기지 못했고, 세상은 그 틈을 주저 없이 파고들었다. 날 것은 상처받기 쉽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 드러난 나의 진심은 쉽게 베이고 찢겼고, 피가 고여 아물기도 전에 다시 갈라지곤 했다. 그리하여 나는 점점 무언가를 감추기 시작했다. 다시는 그렇게 다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에서의 적응이란, 반복되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어떤 숙제처럼 느껴졌다. 매번 새로이 피 흘리며 익숙해져야 한다면, 그건 너무도 불필요한 낭비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버티기를 선택했다. 나를 숨기고, 고정된 틀 안에 머무르며, 변화의 문을 닫아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진 곳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낯설고 낯간지러웠던 관계들이 어느새 편안해졌고, 이해할 수 없던 구조들이 점점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익숙함 속에 안주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내 시선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끼고 있는 색안경을 자각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이 정도면 됐지’라는 태도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맨발로 바닥의 온도까지 느끼며 조심스레 걷던 내가, 이제는 단단해진 발바닥에 무뎌진 감각으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발에는 굳은살이 박였고, 예전처럼 쉽게 베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분이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어느 한 부분은 연약하고, 아직도 어떤 자극에는 쉽게 흔들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약한 살이 언젠가 다시 사회의 칼날에 베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피를 흘릴 것이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색안경을 낀 채 현실을 왜곡하며 나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는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굳은살을 과신해 왔고, 때때로 그것이 마치 내 전부인 양 행동해 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여린 내가 남아 있었다. 성숙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세상의 이치를 모두 꿰뚫고 있는 양 거들먹거리며 걸었던 날들이 있었다. 그 무심한 걸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어쩌면 그때 나는 내 발의 약한 부분이 다시 피 흘릴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변화를 받아들이고자 마음먹은 날, 나는 다시 나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거칠어진 살결과 굳은살 틈새에서 아직도 숨 쉬고 있는 생살의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가 나를 인간답게 만든다.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그 상처가 아물면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져 왔다. 변화란 그렇게 나를 갉아먹으면서도, 동시에 채워주는 힘이었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했지만, 그 변화 덕분에 성장해 왔다. 이제는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무조건 감추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여전히 세상의 바람은 차갑고, 사회의 날은 날카롭지만, 나는 이제 그것을 감당해 볼 용기를 조금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적응은 여전히 어렵고,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긴장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되고, 세상과의 관계를 배우게 된다. 변화는 익숙한 것을 뒤흔들고, 낯선 냄새로 공간을 채우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나를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피 흘리고, 아물고, 다시 피 흘리는 그 순환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변화를 피하는 삶은 어쩌면 고요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는 성장이 없다. 나는 이제 그 고요함보다는 조금은 불안한 성장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 내가 느끼는 이 낯섦과 어색함, 그리고 가끔은 고통까지도 결국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줄 것임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날 것 그대로의 발로, 조금은 두려워하면서도 다시 한번 변화의 땅을 디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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