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너와 나
『어린 왕자』가 말한 길들여짐이 낯설지만은 않았던 날. 네가 내게 다가와 비로소 길들여질 때, 너는 내 삶에서 어느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했던 너는 내게로 와 존재하게 되었다.
달이 있는 것을 보고서야 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은. 항상 그곳에 존재했을 달의 실질적인 존재에 대한 논의보다는 그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기에.
집 앞 하천을 걸으면서 문득 보인 꽉 찬 보름달에, 교량 너머로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던 저 사람에게 달은 어떤 의미였을까.
존재하지 않던 달이 비로소 생겨난 것은 아니었으며, 비로소 마주한 저 사람과 저 달은 서로를 어떻게 길들였을까.
나와 마주한 너도 내게 길들여지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사람은 아니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을 길들이고, 또 길들여졌을 것이며, 그렇기에 너에게 나는 길들일 필요조차 없던 사람일 수도 있으며,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를 길들일 수 있던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며.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는 어쩌면 우연을 넘어선 인연이라는 뜻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길들임으로 의미를 갖게 된 너와 나는 본디 그 자체로 훌륭히 살아오고 있었으나, 우리 서로는 서로에게 길들여짐에서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비로소 살아있게 되었으니.
우리가 나눴던 말과 앞으로 나누게 될 말은 모두 우리 삶의 새로운 파동으로 뛰게 될 것이기에.
내가 지나왔던 수많은 이야기들의 길들여짐이 끝나고 그 끝으로 향할 때, 새로운 이야기의 파동으로 다시 시작되니. 모든 ‘너’는 내게로 와 이야기가 되었고, 모든 ‘너’는 내게로 와 살아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살아있게 되고, 하루를 기다리게 되고, 필요하게 되고, 존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