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다가 어두워지는 것이 있다. 눈처럼 순결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표면이,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지나가고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서 점점 물들어 간다.
아주 조금씩, 처음엔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미세하게 번져가는 회색의 그림자.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들여다보면, 우리는 말한다. ‘어두워졌다’고.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고.
마음도 그렇다. 처음엔 뭐든 맑았다. 누군가의 말에 쉽게 웃을 수 있었고, 조그만 친절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고마웠으며, 작디작은 꿈조차도 온 마음으로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람을 만나고, 상처를 겪고, 어딘가에 기대었던 마음이 서서히 꺾이고 나면, 그 맑음은 흐려진다.
우리는 그 흐려짐을 ‘순수함의 상실’이라 부른다. 더 이상 예전처럼 믿지 못하게 되고, 쉽게 기대지 못하게 되고, 어떤 일에도 쉽게 감탄하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속으로 ‘나는 예전 같지 않다’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정말 어두워진 걸까.
다시 하얗게 칠해보아도, 처음처럼 깨끗해질 수는 없다. 어쩌면 그 사실이 너무 뚜렷하기에, 우리는 더욱 절망하려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덧칠은 헛된 것이 아니다. 처음의 하얀색은 아무것도 겪지 않은 무의 상태였지만, 이제 우리가 덧입히는 하얀색은 고르고 조심스럽고, 경험으로부터 우러난 빛이다.
덧칠에는 손길이 있다. 떨리는 마음이 있다. 다시 맑아지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그것은 되돌아가려는 몸짓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의식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시 맑아지고 싶다’고 느낀다.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몸을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 안의 무언가는 아직도 밝음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어두워지는 중이 아니라, 다시 맑아지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다. 때로는 그 분투조차도 지치고 고단해서, 잠시 멈추고 싶기도 하지만, 우리는 결국 다시 붓을 들고 손을 뻗는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 위에도 덧칠을 시도한다. 그것이 비록 이전과는 다른 색을 만들어낼지라도.
사람이 성장한다는 건, 아마 그런 것일 테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 상처받고도 여전히 따뜻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 어릴 적의 눈부신 순수함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만들어낸 따스한 온기로 자신을 지켜내는 일.
하얗고 순수하던 시절을 지나온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그때의 우리는 순수하게 웃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아픔을 알고도 웃는다. 세상의 거칠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맑음을 꿈꾸는 이들. 그것이 바로 성장한 우리다.
어두워졌다고 해서, 그 빛이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다. 때로는 그 어둠 속에 더 깊은 빛이 숨어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렇게, 불완전한 마음으로도 여전히 맑아지려 애쓴다. 상처를 안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음을, 지친 마음으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우리는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완전하지 않아도, 하얗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덧칠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주어진다. 그 덧칠이 모여, 우리의 오늘이 되고, 내일이 된다.
하얗게 되기 위해 살아가는 중. 우리는 지금도 그 길 위에 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아주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