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의 말처럼 우리의 끝없는 욕심 때문일까? 욕심과 희망 무언가를 원한다는 공통된 의미 속에서 두 단어에 내포된 의미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필자는 기다림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숙명처럼 생각한다.
기다림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기다림 속 시간은 우리 사이에 발생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자연스럽게 제시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은 한다. 시간이 모든 것을, 기다림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기다림이 쉬웠다면,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쉬운 일이었다면 우리가 일상에서의 관계나 하나의 사건에 대해 깊게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당장의 고통에서 허우적 거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 역시 아직 해결되지 못한 어떤 일들에서 여전히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을, 끝없이 날 끌어당기는 급류 속 소용돌이에 여전히 붙잡혀 있다.
지난 사랑을 향한 갈망 속에서 이제는 노력을 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었다. 짧게 사랑했던 기억과 시도만으로 가치를 부여해야했던 다른 많은 기억 속에서 이제는 그 노력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의 요동이 줄어들고, 조금은 온전한 상태가 되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시간이 해결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삶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았고, 그 사랑이 짝사랑이던 외사랑이던 상관없이 사랑을 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난 또 다시 노력했다. 운명은 아니더라도 인연이 되고 싶었던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그 사람과 사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나 기다림이 해결해준다는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지고, -기회는 쟁취해야하는 것이다-, -노력하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따위의 말들이 가슴 속에 더 깊게 박히기 시작했다.
사람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MBTI로 알려진 성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온전한 나였는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정도로 절제된 행동을 보여줬다.
자연스러운 접점 보다는 빠른 만남을 원했고, 어설픈 관계보다는 확실한 선을 요구했다. 어쩌면 이른감이 있는 시간이었지만, AI에게 묻고, 인터넷에 물어서 억지로 도출한 결론에 '가장 타당'하다며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겠다던 다짐과, 무채색으로 살아가겠다던 다짐은 어느새 완전히 사라졌고, 또 다시 애매한 대사로 전송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60분 사이에 모든 것이 결론 지어져버린 그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돌아갔다.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또 다시 후회했다. '기다렸어야지', '아직은 때가 아니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을, 시간이 우리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줄 것을, 무엇이 급하다고 먼저 전했을까. 마음은 다시 요동하고, 잔잔해지려면 시간이 조금 들겠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내 삶을 조종하는 것 같은 어떤 존재는 이 순간에 맞춰 나를 시험하겠지.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닥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