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
가을이 완연해진다. 거리가 물든다. 익어가는 것일까. 죽어가는 것일까. 익어간다는 건 성숙해지는 것이고, 죽어간다는 건 소멸일 테니. 그 두 가지 사이의 의미가 다소 다름은 알겠으나,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의미가 어디에 가까운지는 조금 더 사유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도시는 하얗게 덮이겠지. 형형색색 물들었던 찰나가 지나 모두 갈색으로 변해 사라지면 그 틈을 비집고 하늘에서 쏟아지겠지.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기에, 거스를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사라져 가는 것들을 마주할 우리의 마음은 때로는 무겁게 다가온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독서의 계절이며, 사색의 계절. 계절이 주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비롯된 의견들.
결국 가을은-성숙보다는 고민, 사색, 사유의 계절인 것 같다. 성숙해졌다- 보다는 성숙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
생각과 사색 사유의 결과로 우리는 더 성숙해질 수 있을 테니.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곳 옆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성숙해진 그들 옆에서 아직 성숙해지지 못한 우리가 좇고 있는 것은 고개 숙인 벼를 닮은 성숙의 길일 것이다.
그렇게 성숙의 계절보다는 성숙-해지는 계절이 가고 겨울이 오면, 모두 사라져 버린 곳에서 우린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성숙의 결과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음- 즉, 무소유와 같은 불교적 가르침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생명이 태어나는 봄과 자라나는 여름에 이어 익어가는 가을까지. 그 모든 과정은 결국 겨울의 소멸-로 가기 위한 성숙의 길이었을까?
결국 성숙은 소멸함과 같다면, 우리의 삶이 태어남에 이어 자람과 늙어감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도 다소 이해가 된다. 성숙해져서 소멸하는 것. 자연의 섭리와 꽤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봄은 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번 겨울이 와도, 성숙해지지 못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 보기에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하는 그 삶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한번의 기회가 오는 건 아닐까.
다시 성숙해질 기회를. 다시 살아갈 기회와 다시 자라서 다시 성숙해질 기회를. 그렇게 더 완전하게 소멸할 기회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