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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Apr 25. 2024

홀로서기

아까시나무


 숲 속에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가 있다.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경쟁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존한다. 그런데 개중에는 이를 절대 원하지 않는 나무도 있다. 인간사회로 보면 한 마디로 ‘사회성이 없는 나무’다. 그들은 부득이 숲 가장자리로 밀려 나오거나 아예 홀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렇게 숲을 벗어나 사람 사는 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자연스럽게 접촉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사람과 친숙해졌다. 이 나무가 바로 아까시나무이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라는 귀에 익은 동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아카시아는 정겹고 상상만 해도 향긋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아카시아’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아까시나무’가 맞다. 둘은 서로 다른 종으로 이름이 잘못 알려졌다. 아까시나무는 ‘False Acacia’ 일명 ‘가짜 아카시아’로 원래 열대지방에 사는 아카시아와 유사한 종이다. ‘아카시아를 닮았지만, 가시가 있다.’에서 아까시나무가 되었다.

 외래종인 아까시나무는 한국전쟁 후 수십 년 동안 황폐해진 우리 땅에 산림녹화를 위해 심어진 나무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력이 높다는 것이 선택된 이유였다. 그렇다면 그 강점은 무엇이었을까?

 공기 중에는 질소(窒素)라는 원소가 약 78%로 가장 많이 차지한다. 질소는 생물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핵심 원소다. 그래서 작물 재배를 위해 토양에 공급하는 필수 물질이 질소비료(요소비료)이다. 20세기 초에 인류는 이를 공장에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식량자원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 농업의 대혁명이었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도 질소비료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를 질소고정이라고 하며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해 두 가지 방법으로 직접 만들어 낸다.

 첫 번째는 번개 칠 때 발산하는 강력한 에너지로 생성한다. ‘천둥 번개가 심한 해는 풍년이 든다’라는 속담이 그래서 생겼다. 번개에 의한 질소고정으로 한 해 농사가 달라질 수 있었다. 과거 조상들의 예리한 눈썰미가 빛이 난다.

 두 번째는 세균의 공로이다. 콩과식물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득실거린다. 이들은 토양 속에 들어온 질소를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 공급한다. 자기 몸에 세 들어 사는 기특한 세균 덕분에 콩과식물은 질소비료를 공짜로 챙길 수 있었다.      


 아까시나무가 바로 콩과식물이다. 잘 살기 위한 필수조건 하나가 그렇게 얻어졌다. 그러나 이런 강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무와 경쟁을 회피하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나무가 생장하기 위해서는 양분 외에 햇빛도 중요하다. 질소 공급이 많은 만큼 빛의 흡수 능력도 비례해서 증가해야 한다. 아까시나무는 일조량이 많이 필요한 극양수(極陽樹)이다. 그래서 빛 흡수량에 매우 민감하다.

 주변에 다른 나무로 인해 그늘지면 아까시나무는 사는 게 녹록지 않다. 빛의 방해를 좀 더 받으면 기를 펴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 경쟁에서 밀려 다른 나무와 결코 상생할 수가 없는 홀로서기 운명이다.

 아까시나무는 산기슭이나 길가 또는 무덤가를 선호한다. 특히 민가 주변이나 밭두렁처럼 탁 트인 공간에 모여 산다. 이러한 양지바른 조건에서 생장 속도가 매우 빨라 자연히 활용 가치도 높다. 아까시나무를 다루는 전용 가죽장갑이 판매되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아까시나무는 오래 타고 화력 좋은 땔감으로 으뜸이었다. 쉽게 구할 수 있어 다른 나무의 대체재 역할도 톡톡히 했다. 어린 시절 뚝딱뚝딱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도 그랬고 친구들의 놀이도구 대부분을 만들었던 나무였다. 가지에 붙은 잎자루를 끊어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한 잎씩 떼어냈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었던 낭만이었다.     


 아까시나무는 과거에 5월 중순쯤 중부지방에 개화했으나 지구 온난화로 최근에는 시기가 다소 앞당겨졌다. 하얀 꽃이 만개하면 진한 향기와 함께 꿀을 얻는 혜택이 주어졌다. 어린 시절 꽃송이를 따서 한입에 넣고 훑어 먹을 때 그 달콤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아쉬운 건 오늘날 도시에서는 보기가 어렵다. 나무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지만, 생활환경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서식공간이 사라졌다. 더구나 활용할 일도 적어졌고 숲이 우거지면서 어린나무의 설 땅이 더욱 좁아졌다. 아까시나무를 만나려면 이제는 어딘가 찾아가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홀로서기 운명에 위기가 진행 중이다.   

 

 아까시나무는 콩과()의 낙엽 활엽 교목이다. 가시가 있어 생명력이 강할 것 같지만, 뿌리가 약해 큰 나무는 태풍에 잘 넘어진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시도 어린나무는 많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방어력이 생겨 가시가 퇴화한다.

 오늘날에는 다른 활용도는 낮지만, 벌꿀 생산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밀원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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