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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May 02. 2024

딜레마에 빠지다

편백나무

 

 수십 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수직 세상에 들어섰다. 순간 숨 쉬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때까지 익숙하던 상쾌함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서서히 이완되었다.

 입안에도 무엇인가 확 달라붙는 자극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긴 호흡과 함께 공기를 씹어보았다. 달착지근한 느낌이 제법 괜찮았다. 더욱 신비스러운 건 숲의 바닥에 다른 식물이 전혀 없어 마치 누군가 빗자루로 쓸어놓은 듯 정돈되어 있었다. 신선했던 이 체험은 편백나무가 빽빽한 숲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웰빙’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다양한 생활양식이 나타났는데 숲을 즐겨 찾는 문화가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피톤치드'라는 건강 물질과 그것을 발산하는 편백나무가 관심대상으로 떠올랐다.

 식물이 내뿜는 향기가 바로 피톤치드다. 특히 편백나무는 피톤치드 분비가 많은 나무로 알려졌다. 현대인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충분한 조건을 갖췄고 관련 분야가 주목받았다. 그런데 무조건 긍정적일 것 같았던 피톤치드와 편백나무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또 다른 딜레마가 숨겨져 있다.     


 첫 번째 딜레마는 피톤치드의 모호함이다.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고, 한 장소에 사는 식물은 자신에게 해(害)를 주는 생물에 대항하는 보호물질이 있다. 이것이 피톤치드다.

 사람이 풀숲을 거닐면 풀냄새가 진동한다. 이 상황을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풀들이 향기를 풍겨 나를 반긴다’이다. 그러나 풀의 관점은 다르다. 풀냄새가 곧 피톤치드이므로 ‘자신을 건들지 말라’는 신호를 강하게 내보낸 것이다. 같은 상황임에도 피톤치드에 관한 인간 생각과 식물의 자기 보호 메시지가 다른 셈이다.

 두 번째 딜레마는 숲의 효용성이다. 편백나무는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배타성이 강하다. 이를 '타감작용'이라 하며 그래서 편백숲에는 다른 식물이 거의 없다. 숲속이 말끔했던 이유가 있었다.

편백나무 피톤치드는 사람에게는 향긋한 내음이나 곤충은 대체로 꺼린다. 설사 꺼리지 않아도 먹이나 쉼터가 되는 다른 식물이 없으니 살 수가 없다. 그래서 편백숲은 새집도 없다. 먹이인 곤충이 없어 둥지를 틀지 않는다.

 은 다양한 종이 존재할 때 안정된다. 그래서 학자들은 공존하는 숲을 건강한 숲이라고 말한다. 편백숲처럼 단일 종으로 구성된 숲은 결코 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현대인은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 회복을 위하여 숲을 찾는다. 특히 편백숲, 자작나무숲, 소나무숲…. 등 단일 종으로 이루어진 숲을 선호한다. 또한 그런 숲을 더욱 잘 조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선호하는 편백숲 같은 단순림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숲의 안정을 위하여 혼합림으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머리가 복잡해지는 딜레마다.      

 

피톤치드와 편백나무에서 드러난 딜레마는 ‘만물의 영장’ 인간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다. 인간과 식물이 공존하라는 경고장이다. 또한 단일 종으로 구성된 숲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숲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의 실마리를 전한다. 그런 오묘함에 매료되어 숲 연구에 흠뻑 빠진 나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몰입했던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다시 편백숲을 찾았다. 이전에 느낀 신선함보다는 익숙함이 있었고, 바라보는 마음도 많이 달라졌다.

 숲을 거닐다가 가장 큰 편백나무 앞에 섰다. 두 팔로 다 휘감을 수는 없었지만 나무를 꼭 껴안았다. 처음 찾았을 때의 신비스러움과는 다른 애틋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미~용~감~사’라는 숲 활동가들의 주문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편백나무는 측백나무과() 상록 교목으로 노송나무 또는 히노끼()라고 불린다. 침엽수지만 잎이 납작하다. 내수성(耐水性)이 강하고 최고급 내장재로 활용한다. 추위에 약해 남부지방에 주로 분포했지만, 온난화와 사람들의 높은 선호도로 인해 최근에는 중부지방에도 편백숲 조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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