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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Apr 18. 2024

희망찬가

사과나무

 소년은 마장동 버스터미널에서 김천행 시외버스를 기다렸다. 이른 시간인데도 무더위로 찜통 같았다. 입구에는 경찰이 ‘긴급조치 시행 중입니다’라고 외치며 남자 어른들을 검문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 소년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부모님을 만난다는 설렘에 마음이 들뜬 소년은 무심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부모님은 자식들과 헤어진 사연이 있었다. 5년 전 김천에서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했다. 농사로 먹고살기도 어려웠지만 1남 3녀인 자식 교육을 위해서였다.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전 재산으로 연탄 장사를 시작했으나 1년 만에 실패했다. 빚까지 떠안자, 재기를 위한 종잣돈이 필요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큰딸에게 세 동생을 맡기고 고향으로 다시 내려가 큰아버지의 사과 과수원에서 3년째 일하고 계셨다. 부모님은 서울에 농한기에나 잠깐 왕래하고 편지로 소통했다.     


 김천터미널에 도착한 소년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오후 늦게 큰집에 도착했다. 봄방학 이후 5개월 만에 아들을 만난 부모님은 눈물로 환영했지만, 바쁜 일손을 멈출 수 없었다. 소년도 곧바로 일을 도왔다.

 과수원 주인 큰어머니는 무서운 분이셨다.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잔소리하셨다. 사과를 달걀 다루듯이 조심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평소에 얼마나 피곤하실까를 생각하며 소년은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는 소년에게 나무에 매달려 일하는 어려움을 말씀하셨다. 그래도 지난 4월 23일 하얀 사과꽃이 필 때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셨다고 하셨다. 이 날짜는 오래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날 마침 꽃이 만개하여 어머니에게 ‘4월 23일’은 ‘외할머니 기일’이며 사과꽃 피는 날로 정해졌다.

 부모님의 숙소는 과수원 자재 창고의 한쪽 귀퉁이였다. 늦게 일을 마친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셨다. 그 흔한 석유난로도 없이 과수원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땔감으로 활용했다. 조미료도 넣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어머니의 정성과 무엇보다 ‘시장이 반찬’이라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아버지와 밖으로 나왔다. 봄에 웃자랐을 때 베어 놓은 마른 쑥이 태워졌다. 날벌레를 쫓는 모깃불이지만 소년은 연기가 맵지 않았고, 구수한 향내가 느껴졌다. 아버지는 미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셨다.


 “올해가 여기서 일한 지 3년째니까 이번 농사 마치면 서울 간다. 아비가 조그만 구멍가게 차리면 우리 가족 다시는 헤어질 일 없을 거다.”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 형체만 보이는 사과나무를 바라보았다. 소년에게 사과나무는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희망 나무였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다.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왜 사과나무를 콕 집어서 선택했을까? 사과나무는 오늘 심어도 오랜 세월이 지나야 열매 맺는다. 희망의 미래를 바라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인간의 삶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과거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는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삶을 결정한다. 미래는 어떨까? 오직 희망을 품을 때 달라질 수 있다.    

      

 사과나무는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이다. 사탕(沙糖)처럼 사과(沙果)에서 한자 는 모래이다. 푸석푸석, 아삭아삭한 느낌을 표현한다. 모래가 섞여 물 빠짐이 잘되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사과나무는 작업 편의성과 일조량 확보가 중요하다. 그래서 조성된 시설에서 일정한 모양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지구온난화로 사과 주산지가 고랭지나 북쪽으로 성큼 이동했다. 사과는 비교적 서늘한 기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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