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와 짝퉁’이란 두 사물이 비슷한 듯하면서 같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진짜나 가짜를 나타내기도 한다. 과거 단순한 시대에는 원조나 짝퉁에 의미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게 다양화된 오늘날은 ‘원조와 짝퉁’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짝퉁도 필요에 따라 출현했다. 원조가 감당할 수 없는 역할에 충실하다면 긍정의 의미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식물 세계에도 원조와 짝퉁의 사례는 흥미롭다. 우리 땅에 토종인 원조와 달리 은근슬쩍 정착한 외래종 짝퉁의 경우다. 한국인과 친근한 소나무도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소나무는 한국인의 삶과 늘 함께했다. 예전에 아기가 태어나면 집 앞에 생솔가지 금줄을 쳤다. 그리고 목재와 땔감으로, 죽은 후 관에 이르기까지 관계가 이어졌다.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나에게는 소나무가 하나의 개체로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이 내신 문제를 통해서였다.
“사과나무에는 무엇이 달릴까요?”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사과입니다”
“감나무에는 무엇이 달릴까요?” “감입니다”
“그렇다면 소나무에는 무엇이 달릴까요?” “소??”
문제의 의도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분명한 건 선생님이 창문 너머에 있던 소나무를 지목해서 설명하신 장면이다. 그 존재를 제대로 인식한 순간이었다.
숲에 가면 나무 중 가장 많은 소나무가 눈에 띈다. 그런데 무심코 보면 다 같은 소나무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애국가’ 2절에 등장하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아닌 것이 제법 섞여 있다. 원조 소나무와 짝퉁인 리기다소나무다.
리기다소나무는 어린 시절에 송편 빚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솔잎을 따오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이 있었다. 금방 소쿠리에 채워 갔으나 헛수고였다. 내가 채취한 건 리기다소나무 잎이었다. 어머니는 리기다소나무에 관해 설명하셨다. 뾰족한 2개 잎이 붙어 있는 소나무의 ‘2엽송’과 다르게 ‘3엽송’이며 뻣뻣하고 향이 적어 송편 찔 때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물론 그때 들은 말은 아니다. 어른이 되어 차이를 알고 나니 그 이야기일 것으로 추측한 것이다.
차이는 또 있다. 대부분 식물은 생존이 힘들면 꽃이 만발해 많은 종자를 만든다. 종족 번식이 곧 위기관리 능력이다. 리기다소나무도 극단적 생존방식을 장착했는데 줄기 중간에 나와 있는 새싹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영양이 부족하면 윗부분을 스스로 죽인다. 그 아래쪽 새싹에서 새 가지를 만들고 생명을 잇겠다는 처절한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씨가 담긴 솔방울을 많이 만들어 다음 세대를 퍼뜨릴 준비를 한다.
생존의 강점을 갖춘 리기다소나무는 1970년대 우리나라 민둥산에 가장 적합한 수종으로 심어졌다. 산림자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나무로 기록되었다.
나무 심기에 집중했던 시대를 넘어 현재 우리나라는 숲의 풍요를 돌려주는 산림복지 시대가 열려있다. 그러한 변화에서 산림녹화의 일등 공신이었던 리기다소나무는 경제성이 떨어지고 송진이 많아 산불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산림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제는 임무 완수를 마치고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다.
소나무는 소나무과(科) 상록 침엽 교목으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나무 중 최고라는 의미로 우두머리 → 수리 → 술 → 솔 → 소(ㄹ탈락)나무로 변했다. 한자 송(松)도 나무 木과 공자 公이 합쳐진 글자다. 나무의 공자라는 의미로 이름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특히, 소나무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치유에너지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