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계절별로 선물을 듬뿍 준비한다. 봄에는 꽃으로, 여름은 짙은 녹음과 그늘, 가을에는 열매와 단풍이다. 이 선물을 한결같이 그리고 아낌없이 사람에게 전해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의 기운이 올라오면 그 선물 보따리가 하나씩 펼쳐진다.
완연한 봄이 왔다. 나무들은 동시다발로 기다렸던 개화를 시작한다. 이 중 화려함의 정점을 과시하는 건 단연 벚나무다. 그래서 사람들이 봄이 되면 ‘올해 벚꽃은 언제 피지?’라는 막연한 기다림과 함께 특별한 사연을 꿈꾼다.
‘우리나라에서 벚꽃이 가장 유명한 곳은 어디일까?’ 물음에 대한 공통적인 답이 있다. 경남 진해이다. 그러나 과거의 대답일 뿐 지금은 아니다. 21세기의 정답은 따로 있다.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그만큼 예전과 달리 벚나무가 많아졌다.
1990년대를 전후하여 우리나라는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면서 단지 내 조경수로 벚나무를 많이 심었다. 거리나 공원도 마찬가지다. 그 나무들이 세월이 흘러 규모가 커지면서 전국의 벚꽃 명소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
2012년 발표된 대중가요 ‘벚꽃 엔딩’의 반복되는 노랫말이다. 누구나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보면 벚꽃 핀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전에 느꼈던 벚꽃의 화려한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벚꽃은 사람 마음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꽃과 차이가 있다. 꽃을 바라보면 보편적으로 마음이 안정되지만, 활짝 핀 벚꽃은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진다. 마치 박진감 넘치는 운동경기에 열광하는 것처럼 좋은 감정 변화로 느껴진다.
벚꽃의 화려함은 강렬하다. 감성의 눈으로 바라보면 갓 튀긴 팝콘이나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나무마다 번식을 위한 다양한 개화 전략이 있다. 배롱나무나 무궁화는 오랜 시간 개화가 이어지나 벚꽃은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피고 진다. 좀 더 지속하면 번식이 더 잘될 텐데 왜 짧은 시간만 개화하는 걸까?
맑은 날 활짝 핀 벚꽃에 그 해답이 있다. 눈만 현란한 게 아니라 소리도 요란하다. 수많은 벌이 ‘왕왕’ 대며 이 꽃 저 꽃을 바쁘게 넘나든다. 최고의 화려함이 주변의 벌을 모두 끌어들여 잔치판을 벌이고 수분(受粉)이라는 원하는 욕구를 단시간에 해결한다. 그렇게 1년의 기다림으로 얻은 절호의 기회를 찰나의 존재감으로 끝내고 깨끗하게 사라진다.
개화를 마치고 춤추듯 바닥에 뿌려지는 꽃잎을 꽃비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덧없는 세월이나 존재의 무상함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꽃비는 화려함의 끝판왕으로 아쉬움과 놀라움의 감정을 섞어놓은 작품이다.
설렘의 마음으로 벚꽃을 상상만 해도 이미 봄을 최고로 만끽한 것이다. 사람의 뇌는 만개한 벚나무 아래에 서 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봄이 되면 변함없이 벚꽃이 핀다. 그 꽃길을 살랑살랑 걸어보자. 화려함이 생명의 에너지가 되어 몸속에 채워진다.
벚나무는 장미과 활엽 낙엽 교목으로 가로수로 가장 많으며 꽃말은 '영혼의 아름다움'이다.유사 종이 많지만, 생활 주변에는 왕벚나무가 대부분이다. 과거에는 일본 국화(國花)라는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국민 정서를 불편하게 자극했으나 토종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지금은 가장 사랑받는 나무가 되었다.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의 2/3 정도가 산벚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무 재질이 단단하고 결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만큼 옛날에도 많았고 친숙한 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