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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Mar 21. 2024

다르게 산다는 것

목련


 “목련은 잎도 없는데 왜 꽃이 먼저 피나요?”          

 

 누군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식물 중에는 목련처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종(種)이 있다. 이해되지 않지만, 수긍이 간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인데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식물은 오랜 세월을 존재하면서 생존에 대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다 멸종되거나 살아남은 종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처한 환경에 최고로 적응한 것이고 그게 바로 진화이다.     


 이른 봄에 움트는 목련은 크고 화려한 꽃이 핀다. 아쉬운 건 한꺼번에 피었다가 꽃잎 색깔이 변하며 빨리 사라진다. 더구나 일주일 남짓 피었다가 지는 향연에 잎은 없고 꽃만 있는 것이 특이하다.     

 식물은 봄이 되면 잎이 나오고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목련처럼 순서를 바꿔 꽃부터 먼저 피는 나무도 제법 있다. 매화, 벚나무, 진달래…. 등이다. 이들은 무슨 꿍꿍이일까? 여기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꽃이 먼저 피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가을에 만들어진 꽃눈이 월동 후 개화한 것이다.

 그래도 의문점은 풀리지 않고 미궁에 빠진다. 다른 식물처럼 잎이 나고 순리대로 꽃을 피우면 될 일이다. 굳이 겨울이라는 고난을 견뎌내고 이른 봄에 개화하는 이유가 더욱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 새벽녘에 어머니를 배웅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어머니는 한강 변에서 낮에 물쑥을 캐셨다. 그것을 밤에 다듬어 삶은 후 새벽 첫차를 타고 경동시장으로 팔러 가셨다. 일찍 나가야 그나마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른 봄에는 곤충들이 먹을 게 별로 없다. 이때 재빠르게 꽃을 피워야 곤충의 왕성한 활동으로 종족 번식에 유리하다. 완연한 봄이 되면 산과 들에 온갖 꽃이 핀다. 이쯤 되면 여유가 생긴 곤충에게 선택받기란 쉽지 않다. 그 옛날 어머니가 새벽이슬을 맞아야 했던 사연과 목련이 서둘러 개화하는 이유는 부지런해야 가능했던 절실함 즉, ‘타이밍(Timing)’이 관건이었다.

 목련은 큰 꽃으로 곤충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큰 꽃은 또 다른 사연이 있다. 나무는 빛을 받기 위해 줄기나 꽃의 방향이 남쪽 지향성인 데 반해 목련은 북향화(北向花)다. 겨울을 견디는 꽃눈이 솜털로 첩첩이 덮여 있는데 빛이 잘 드는 남쪽이 북쪽보다 미세하게 생장이 빠르다. 봄에 꽃망울이 터지면 남쪽 꽃잎이 건실하여 꽃이 북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목련은 어려운 시기를 다르게 살았다. 그 다름이 강점이 되었다. 단지 소소한 안타까움은 뒷모습이다. 영양이 부족한 이른 봄에 큰 꽃을 무리하게 피웠으니 오죽할까? 오래 버티기 어려워 자연의 꽃 중 가장 참혹한 광경을 연출한다. 하얀 꽃잎이 검게 변하며 사그라진다.

 혹자는 이를 두고 ‘본색을 드러냈다’라고 가혹하게 말한다. 번식에 충실한 절실함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바닥에 떨어진 목련꽃의 최후는 자손을 위해 모든 기운을 쏟아내고 타들어 가는 부모의 모습이다. 다름을 선택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숭고함‘이라는 꽃말에 더욱 공감이 간다.


 목련(木蓮)은 목련과() 낙엽 활엽 교목이다. 나무에 핀 연꽃이다. 제주도에 서식하는 토종 목련과 중국 원산의 백목련, 자주색 꽃인 자목련도 있다. 함박꽃나무로 불리는 산목련은 초여름에 개화하고 향기가 탁월하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하며 국화(國花)로 지정되어 있다.

 목련의 정체성은 백목련으로 단아함이 돋보인다. 그래서 목련은 시()와 노래에 자주 등장하여 봄의 전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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