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향백리(花香百里), 인향만리(人香萬里)
라일락(Lilac)
누구나 기분 좋을 때 콧노래가 나온다. 평소 즐겨 부르거나 잘 알려진 것일 수 있다.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해방 후에 전해진 멕시코 대중음악 ‘베사메무쵸’도 즐겨 부르는 콧노래 중 하나였다. 흥겹거나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자리에 등장했고 어깨를 들썩이며 흥얼거리면 신바람 나는 노래였다.
번안곡 ‘베사메무쵸’를 오랫동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불렀다. 이 노래에는 다음과 같이 귀에 익은 가사가 있다.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내용에 별 관심이 없다가 프랑스어 리라꽃이 라일락꽃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라일락은 분명 나무지만, 교목이 아니라 나무라는 인식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라일락 나무’라는 말은 다소 어색하고 ‘라일락꽃’이 자연스럽다. 나무인 개나리나 진달래도 개나리꽃, 진달래꽃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작은 힘이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하듯이 꽃잎이 작은 라일락도 한 가지에 무더기로 피어있어 화려하다. 꽃도 예쁘지만, 향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까시나무, 쥐똥나무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개화하여 향기가 진하기로 소문났다. 중국 고서에 등장하는 ‘화향백리’ ‘꽃의 향기가 백리를 간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라일락 향기의 전파력은 놀랍다.
만개한 라일락 옆을 스쳐 가면 바람에 흩날리는 향기가 정신을 아찔하게 한다. 기억에 새겨질 만큼 자극적이다. 은은한 향기는 생활 주변에도 흔히 만날 수 있다. 화장품이나 방향제 등 향기가 필요한 장소나 상품에서 익숙한 내음으로 자리 잡았다.
라일락꽃은 흰색, 붉은색 등 여러 색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연보라색으로 꽃말은 ‘사랑의 시작’이다. 향기에서 금방 느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며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 순간에 어떤 사람과 함께 있거나 마음속에 떠올리면 사랑의 감정이 솟아날 수밖에 없다.
남녀 간의 사랑을 흔히 ‘불타는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둘이 하나 됨을 체험하는 생명의 연소 작용이다. 라일락이 품고 있는 향기가 이 연소를 촉진하는 좋은 땔감이나 산소 같은 역할을 해준다.
여기서 다른 모습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라일락잎을 씹어 보면 표정이 변한다. 이 맛을 느껴보고 인생을 논하라는 여담이 있을 만큼 뒷맛이 몹시 쓰다. 그 쓴맛의 정체가 바로 사랑의 완성을 위해 따라다니는 희생과 아픔이며 감당해야 하는 몫이 아닐까?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의 향기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나타날까? ‘인향만리’,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라는 말이 답을 알려주었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음미하여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기이다. 선한 영향력이며 제법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사람의 향기는 인격에서 나온다. 그것이 배려라는 작은 알갱이로 다른 사람에게 확산하는 것이다. 올봄에도 변함없이 라일락을 만난다. 아름다움에 취하고 향기에 매료될 것이다. 그 향기를 만끽하면서 받은 만큼 반사적으로 향기를 뿜어내고 싶다. 사랑하는 내 가족과 이웃이 좀 더 웃을 수 있도록….
라일락은 물푸레나무과(科) 낙엽 활엽 관목(灌木)이다. 내한성, 내병성이 강해 전국 어디나 분포하고 그늘에도 잘 자란다.
세계적인 관상수이며 많은 품종이 개발되었다. 한국은 세 종류가 대표적이다. 토종 수수꽃다리, 털개회나무가 미국에서 개량되어 되돌아온 미스킴라일락, 가장 일반적인 서양수수꽃다리이다. 수수꽃다리는 꽃이 수수처럼 생겨서 ‘수수꽃 달리는 나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