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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May 09. 2024

세한도(歲寒圖)를 21세기에 만나다

잣나무


 개인이 소장하던 그림 한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는 장면을 TV에서 보았다.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 이야기다.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가 그린 문인화로 초라한 집 한 채와 주변에 소나무, 잣나무가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당시 제주도 유배 생활에서 도움받은 제자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전해준 그림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작가는 인간의 의리와 지조를 늘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에 담아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했다. 또한 힘들 때 도움을 주고받는 두 나무를 진정한 벗으로 그려냈다.      


 그림 속 두 나무의 관계가 궁금하다. 생김새가 비슷한 소나무와 잣나무가 어울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을까? 전해 내려오는 한 고사성어가 이 물음의 실제를 짐작하게 한다. ‘송무백열(松茂柏悅)’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라는 뜻으로 세한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뜻은 아름답지만, 자연의 순리를 따져보면 이치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두 나무는 종이 다르므로 경쟁 대상이 되어야 한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옆에 있는 잣나무의 삶이 팍팍할 텐데 기뻐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 실마리는 상호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침엽수이며 소나뭇과(科)에 속하는 소나무와 잣나무는 아군(我軍)은 아니나 그래도 우군(友軍)이다. 이들의 서식지를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오는 활엽수가 공동의 적군(敵軍)이다. 일종의 삼각관계인 셈이다.

 그러므로 소나무가 무성하여 활엽수의 확산을 막으면 잣나무는 생존에 유리하다. 무성한 소나무 숲이 강풍을 막아주기도 한다. 소나무 덕분에 잣나무가 도움을 받는다. 서로 역할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세한도에서 등장하는 두 나무는 이렇게 모진 바람을 막아주는 어부지리(漁夫之利) 효과로 상생 관계를 이어간다.     


 ‘기쁨을 나누면 배(倍)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半)이 된다.’ 아름다운 이 말은 추운 겨울에 따뜻한 인격을 갈구한 작가의 내면세계와 맥을 같이한다.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세한도는 그림 자체보다 이처럼 따뜻한 인간애를 담아냈다.

 21세기에 만난 세한도는 어떨까? 시대적인 상황은 변했지만, 여전히 그 의미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 않다. 사람이든 나무든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가치가 공존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오엽송(五葉松) 잣나무는 상록 교목으로 한국 고유종이다. 도시에서는 공해에 강한 외래종 스트로브 잣나무가 대부분이다. 고유 잣나무에만 달리는 잣은 귀한 영양식으로 20년 정도 수령이 되어야 솔방울 속에 담겨 나무 꼭대기에 열린다. 그래서 사람이 따기 쉽지 않다. 청설모 등이 먹거나 땅에 묻어 두어 나중에 자연 번식으로 이어진다.

 추위에 강해 고도가 높은 곳이나 중부지방 이북에 많다. 성경(Bible)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를 만든 나무로 알려져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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