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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May 16. 2024

명품 그늘

느티나무


 “어~ 뭐야. 어디 갔지? 저기 봐 없어졌어”     


 차창 넘어 늘 그 자리에 있던 게 없어졌다. 감출 수도 없는 거목이 사라진 것이다. 지상 최대의 마술? 아니면 착시? 둘 다 아니었다. 500년 넘게 널찍한 그늘을 만들었던 나무가 여러 해 앓다 수명을 다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 잔해 또한 사라져 주변은 휑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아내 고향은 충북 보은이다. 처가에 가려면 ‘원정리’라는 마을을 지나야 한다. 처음 방문했던 날. 그곳 녹색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형이 돋보이는 느티나무였다. 들녘 한가운데 있어 지날 때마다 그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쉼을 누렸다.

 2010년이 되면서 평범했던 그곳에 변화가 생겼다. TV 드라마 촬영장으로 명소가 된 것이다. 또한 탁 트인 들판에서 은하수 관찰이 좋다는 소문으로 사진작가들도 몰려들었다. 삶의 현장이며 쉼터인 그곳이 밤낮으로 자동차와 사람이 붐비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느티나무를 바라보던 내 여정도 의도치 않은 작은 변화가 생겼다. 원정리를 거치지 않는 지름길이 개통되면서 일부로 가지 않으면 볼 기회가 사라졌다. 그동안 보고 느꼈던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세월이 흘러 2021년 봄에 느티나무가 고사했다는 것을 우연히 알았다. 사람들은 자연 수명을 다했다느니, 누군가 어떻게 했다느니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들려주었다. 지난날 나무와 함께 누렸던 추억이 못내 아쉬웠다.     


 느티나무는 은행나무, 주목과 함께 장수목(長壽木)이며 마을의 수호신 당산목(堂山木)이다. 무엇보다 명품 그늘을 만들어 쉼터를 제공하는 정자목(亭子木)으로 알려져 있다. 그늘은 줄기와 가지를 넓게 펼칠 수 있어 가능하다. 그런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지가 길고 많으면 거센 바람에 견뎌내기 쉽지 않다는 말인데 느티나무가 안정된 모습을 유지한 비밀은 무엇일까?

 뿌리 깊은 나무라 가능했다. 느티나무는 지표면을 기준으로 줄기와 뿌리의 세력이 거의 같다. 나무가 위로 커질수록 뿌리도 깊어져 고목일수록 더욱 뿌리 깊은 나무가 된다. 단단한 재질도 한몫했지만, 탄탄한 뿌리가 줄기와 가지를 지탱해 명품 그늘을 만들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한 집단의 존경하는 지도자를 ‘느티나무와 같은 존재’라고 비유할 때가 있다. 어떤 존재를 말할까? 느티나무는 다른 나무와 촘촘하게 자랄 수 없어 홀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어둠이 질 때 지평선에 나타난 느티나무의 높고 넓은 자태는 ‘평안’이며 두 팔 벌린 모습이다. 그래서 느티나무는 의연함과 자애로움으로 자식을 안아주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햇볕이 따사로운 날. 어머니의 사랑을 품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았다. 끝없이 펼쳐진 녹색 들판을 바라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상상만으로도 기운이 솟아나는 상쾌한 풍경이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이다볼품없던 묘목이 늦게 티가 난다 하여 늦티나무’ 늘 티가 난다고 하여 늘티나무’ 등 이름의 유래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정겨운 고향을 떠오르게 한다전국에 수령이 천 년 이상 된 나무가 수십 그루 분포하여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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