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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May 23. 2024

느림의 미학

회양목

 “아비야 꽃이 참 예쁘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아파트단지를 산책할 때 들었던 말이다. 처음에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꽃이 없는 이른 봄이었고 보이지도 않아 농담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손끝이 가리킨 작은 나무에 연노란색 꽃이 정말 있었다. 눈높이를 낮추고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는 아담한 꽃이었다. 도톰하고 반질반질한 잎과 같이 섞여 있었는데 색깔이 비슷하여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그 어떤 나무보다 사람들 가까이에 있고, 또한 많이 보았을 이 나무가 회양목이다.      


 회양목은 화단이나 정원 경계선에 울타리로 둘러싸고 있는 나무다. 조경을 위해 이발 기계로 윗머리를 밀 듯 반듯하게 자르고 측면은 수직으로 각을 낸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다. 경사지에 축대 쌓을 때 돌과 돌 사이에 심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만큼 가뭄과 공해에도 최적화된 생명력을 지녔다.


 총량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빨리 자라는 나무는 대체로 수명이 짧으며 재질이 무르다. 1년생 풀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회양목은 매우 느리게 자란다. 그래서 수명이 길고 재질이 단단하다. 최고 높이까지 자라려면 자그마치 수백 년이 걸린다.

 회양목은 느린 성장을 바탕으로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덕분에 재질이 치밀하여 정밀한 목공예에 적합한 고급 목재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도장나무’라는 별칭도 그래서 생겼다. 나무의 느린 성장이 이처럼 오랜 생존과 내공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식물 세계와 다르게 인간사회에서 느림의 생활은 어떤 의미일까? 바쁜 일상과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느림은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 여유 부린다고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노화로 인하여 느릴 수밖에 없는 노년의 삶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느림은 주어진 일이나 행동을 늦추는 속도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느림은 심리적인 문제이며 생활의 여백을 만들라는 뜻이 더 중요하다. 여백은 곧 느림의 미학으로 개인의 삶에 행복한 습관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과거 푸대접받던 꽁보리밥이 현재는 건강식으로 인식이 달라졌다. 마찬가지로 느림의 의미도 게으름이나 무능력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능력이 되었다.     


 회양목은 회양목과() 상록 활엽 관목이다. 한국 고유종으로 석회암지대인 강원도 회양지방에서 이름이 유래했으며 전국 어디나 잘 자란다. 꽃은 화려함보다 향기가 대세라 이른 봄에 겨우내 굶주린 벌을 불러 모은다.

사람에게 관리되어 자유 생장할 수 없어 일정한 모양을 유지한다. 느리게 생장하여 꽃말이 참고 견뎌냄이다. 그래도 사람에게 쓰임새가 있어 생활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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