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나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 나무의 뚜렷한 강점을 먼저 떠올린다. 감나무 하면 감이라는 열매, 벚나무는 단연 꽃이다. 그런데 꽃과 열매가 함께 주목받는 나무가 있다. 꽃은 매화, 열매는 매실이라 부르는 나무다. 그래서 매화나무 또는 매실나무로 불리지만 열매를 강조한 매실나무가 종명(種名)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우리 사회는 건강에 관한 욕구가 높아지고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웰빙(참살이)이 등장했다. 이 문화에 편승해 건강식품으로 관심받은 것 중 하나가 ‘매실’이었다. 가는 곳마다 본인이 담근 매실청(발효액)이라고 소개하며 매실차를 대접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TV의 영향이 컸다.
매실은 예로부터 해독작용을 통한 피로회복과 소화를 다스리는 명약으로 동의보감을 통해 전해 왔지만, 열광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드라마에서 고열과 설사를 앓는 역병 환자를 매실로 회복시키는 장면이 나온 후 그 효능이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너도나도 매실청을 담그고 나누기 시작했다.
매실과 달리 매화는 우리나라 사람의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이 큰 꽃이다. 옛날 선비의 글과 그림에 많이 등장한 단골 소재였다. 눈 속에도 피어나 은은한 향기를 내는 매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매불매향(梅不賣香) 즉, ‘향기를 남에게 팔지 않는다’라는 굴하지 않는 기개의 선비정신이 담겨있다.
동양에서는 완전한 인격체를 ‘군자’라 부른다. 이를 의인화한 식물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梅蘭菊竹) 중에서도 으뜸은 매화였다. 겨울의 고난을 이겨내고 봄이라는 희망을 가장 먼저 알린 전령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기다리고 반갑게 맞이했던 매화는 꽃말이 ‘품격’이다.
6월이 왔다. 청량한 여름을 기대하듯 시골집의 초록 매실이 익어간다. 매년 이맘때면 아내에게 묻는 말이 있다.
“여보. 매실청 담가야지. 올해는 설탕 몇 kg을 주문해야 하나요?”
“아니 안 할 거예요. 재작년에 담근 것도 아직 남았는데요”
우리 집도 매실청이 남아돈다. 하긴 오랫동안 많이 먹었다. 세월이 흐르며 사람의 입맛도 변했지만, 건강식품도 새로운 제품이 넘쳐난다. 이제는 매실의 시대에서 약발이 다소 빠지는 분위기다. 그래도 한 시절 뜨겁게 사랑받았던 매실이었다.
매실나무는 장미과 낙엽 활엽 소교목이다. 매실(梅實)의 매(梅)는 나무 목(木)과 사람 인(人), 어미 모(母)가 결합한 글자다. 임신한 여자가 신맛 나는 과일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어머니 나무의 열매로 해석되어 매실이 되었다.
매화 역시 우리 삶에서 늘 함께한다. 지갑 속의 천원 권과 오만 원권 지폐에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