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Time machine)은 과거와 미래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공상 도구이다. 산업혁명이후 이동 수단의 발달을 계기로 공간 기술을 시간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과학의 발달과 맥을 같이하는 이 말은 19세기말 과학소설에 처음 등장했다.
숲속에도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이미지를 가진 나무가 있다. 이름이 길고 정확히 발음하기도 어렵다. 내가 어릴 때는 전혀 몰랐다가 어른이 되어 피라미드형의 가로수로 처음 알게 된 메타세쿼이아다.
인류는 은행나무나 소철과 같은 식물을 흔히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른다. 이 말은 옛날에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식물이라는 뜻이다. 물론 오래전에 살았다는 증거가 화석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메타세쿼이아는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사연이 있다. 화석으로 먼저 발견되었으나 그때는 ‘살아있는 화석’이 아니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지구상에는 없는 멸종 식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자생하던 나무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뒤늦게 ‘살아있는 화석’의 반열에 올랐다.
그 큰 나무가 그동안 어떻게 숨어 있었을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공백기를 넘어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느껴진다. 메타세쿼이아는 멸종하지 않고 수억 년 동안 대를 이어온 생명력이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와 ‘쥐라기’를 함께 살았던 나무를 지금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수백 년 된 고목(古木)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모진 세월을 견뎌온 상흔이 나무 곳곳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커서 고목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젊은 편이다. 1970년대 이후에 묘목이 심어져 최고 수령이 반세기 정도이다. 그만큼 생장 속도가 빨라 단기간에 짙은 그늘을 담은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낸다.
하늘로 치솟은 메타세쿼이아 숲을 거닐며 그곳에서 치유에너지를 만끽해 보자. 나무 밑에서 위를 바라보자. 옆에서 숲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장관이다. 간간이 스며드는 햇빛이 여린 가지 끝에서 반짝거리면서 황홀한 감동이 시나브로 전해질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메타세쿼이아. 사람도 타임머신을 타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의외로 어렵지 않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의식 세계가 있어서 가능하다. 오래 전의 추억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미소 짓게 하는 것. 미래의 꿈을 현실에서 조각해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건 의식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타임머신의 매력이다.
혹시 아는가? 과거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온 미래가 오늘이지는 않은지….
메타세쿼이아는 낙우송과(科) 낙엽 침엽 교목으로 봄과 여름에는 신록, 가을은 갈색 단풍, 겨울에 잎이 떨어진다. 물 도둑이라 불릴 만큼 물을 좋아해 수삼(水杉)나무라고 한다. 화석으로만 알려졌던 시절에 북미(北美)의 ‘세쿼이아’와 유사한데 이보다 앞선 종이라 하여 메타세쿼이아라 불리게 되었다.
한때 도시의 가로수로 주목받았으나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현재는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심을 벗어나서 우아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이 낭만을 상징하며 명성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