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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Dec 19. 2024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적반하장(賊反荷杖)


 이틀 동안 힘든 출장이었다. 경남 진주에서 꽉 찬 일정을 마치고 대전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막차였는데도 만석이었고 예매한 좌석은 복도 쪽이었다. 창가 쪽 옆자리는 먼저 탄 남자가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술 냄새가 심했다.

 출발시간이 되어 서둘러 안전벨트를 찾았다. 벨트는 좌석 오른쪽에 있는 고리를 왼쪽으로 당겨 끼우면 되는데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옆의 남자가 본인 좌석의 고리 대신 내 고리를 당겨 이미 채워버린 것이다.

 잠을 깨우기도 미안하여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쪽 고리를 길게 당겨 벨트를 채웠다. 피곤함이 몰려와 눈을 감았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잠자는 줄 알았던 그 남자가 실내가 더운지 벨트를 풀고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선반에 옷을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더니 불만스럽게 말했다.      


 “여기요. 벨트를 제대로 끼우셔야죠. 남의 것을 채우면 어떡합니까?”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라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을 알고는 있었지만…. 짧은 순간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잘못 끼웠던 사실을 모르는 그에게, 더구나 고요한 버스 안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냥 벨트를 풀고 눈을 감아버렸다. 조금 전 그를 깨워 미리 말했어야 했다. 타이밍(Timing)을 놓치고 나니 졸지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잠도 오질 않고 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 상태로 내리면 좋지 않은 마음으로 귀가해야 한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돌아보니 나 역시 그런 태도를 남에게 보였던 사례를 떠올렸다. 틀린 걸 알면서도 체면을 위하여 생각을 고수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용기를 내어 버스에서 내리는 그에게 말했다.

 ‘아까는 불편하셨지요? 편히 가십시오’라고 말하자 그는 멋쩍어하며 다소곳한 표정으로 ‘아이고~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먼저 말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왜 먼저 사과를 해?’라는 마음속 반발이 심했지만, 말하길 잘했다. 그도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아는 눈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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