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으로 시작된 분위기가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래전 대학에서 강의하던 날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취업과 평생 직업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송충이는 솔잎을,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산다’라는 비유가 나왔다. 그때 무심코 던진 엉뚱한 질문이 빌미였다.
“뽕나무 열매를 뭐라고 하는지 아는 친구 있나요?”
도시에서는 보기 어렵고 흔히 파는 과일이 아니라 잘 모를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맨 앞의 여학생이 주저없이 ‘오디’라고 대답했다. 그 아이가 알고 있는 게 신기했다.
“오디를 알아요?”
“네 우리 시골집에서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도 키워요”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물었다. 살짝 장난기가 발동했다.
“누에가 있는 걸 보니 완전 촌이네요. 혹시 집에 짜장면 배달 되나요?”
“네? 아~니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황당한 질문과 수줍은 대답에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주변의 남학생들이 끽끽거렸고 그 여학생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스갯소리였는데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했지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수업을 진행했고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일주일 후 다시 그 반 수업 시간이 되었다. 강의실 앞에 그 여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지난주의 일은 까맣게 잊었고 별생각 없이 교실로 들어가는 순간 귓속으로 전해오는 또렷한 말에 멈칫했다.
“교수님. 열 그릇 이상 주문하면 배달해 준대요”
듣는 순간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강단에 서서 앞을 바라보자, 지난 기억이 스쳐 갔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며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의기소침했던 그 아이의 순진한 모습. 중국음식점에 전화로 확인하는 모습. 그것을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 그리고 용기 내어 내게 전하는 좀 전 모습까지….
짜장면 배달이 뭐길래! 여린 마음에 부담을 주고 도시와 시골을 차별하는 불필요한 논란거리를 만들었는지? 시골(촌村)에 대한 나의 편견이 문제였다.
아쉽고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은 행복한 기억으로 변했다. 그날의 돌발 사건을 계기로 그 여학생과 나는 가장 이상적인 사제(師弟)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