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서울의 초등학생 버스 요금은 10원이었다. 시내버스는 일반버스 외에 노선이 같은 좌석버스가 있었는데 요금이 2배로 비쌌다. 당시 통학생은 대부분 중고생이었으며 초등학생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잦은 이사를 해야 했던 나는 2학년 때부터 통학생이었다.
유난히 차 타는 게 즐거웠다. 거리의 분위기나 다른 동네 모습 등 차창 밖 세상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런데 일반버스는 전철처럼 좌석이 일자형이라 몸을 돌려야 해서 불편했다. 좌석버스는 달랐다. 승객도 적고 좌석이 가로 배열이라 자리를 옮기며 밖을 내다보기가 수월했다.
아침 등교 시간은 모든 버스가 콩나물시루처럼 만원이라 탈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오후 하굣길에는 좌석버스가 한가해 밖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지만 문제는 차비였다. 주머니에는 늘 10원만 남아있었다.
오늘날과 달리 당시 시내버스는 기사 외에 승하차를 관리하는 여성 차장이 있었다. 포기할 수 없던 나는 좌석버스가 정류장에 서면 용기를 내어 반값 거래를 시도했다.
“누나! 10원에 태워주면 안 돼요?”
9살 꼬마의 애절한 요청에 손을 흔들거나 못 들은 체 하면 ‘No’를 의미한다. 금세 시무룩해졌다. ‘야~타’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신났다. 공짜 느낌에 차장 누나가 천사로 보였다. 내게는 야타족이 되는 것이 큰 행운이었다.
어린 나이에 통학하면서 홀로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다. 용돈은 낯선 지역으로 버스나 기차를 타고 대담하게 다니는 데 사용했다. 자연히 지명을 알고 길을 찾아내는 ‘길눈’ 역량이 쌓여갔다.
훗날 어른이 되어 전국의 길을 파악한 내게 지인(知人)들은 여행 갈 때 경로를 물었다. 정확한 코스와 시간을 알려주면 여행 후 늘 칭찬을 받았다. 그러다가 자동차 문화의 혁신인 내비게이션이 등장하면서 그들은 나를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불렀다.
내비게이션은 소위 ‘길치’인 사람에게 고마운 문명의 도구이다. 그러나 나는 내비게이션의 등장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다. 더 이상 누구도 길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내세울 수 있는 재주 중 하나의 강점이 사라져 버렸다.